외국 호텔의 객실에는 거의 예외 없이 성경책이 놓여있다. 그 관례의 원조는 미국이다. 대통령 취임식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가 그곳 아니던가. 달러화에 인쇄된 글도 그렇다. “In God We Trust.”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라는 뜻이다. 알고 보면 미국이야말로 종교 국가라고 미국학 연구자들이 규정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들에게 기독교란 시민종교인데, 유럽 사회와 또 다른 성격의 시민종교는 메이플라워 호 선상에서 탄생했다. 131명의 청교도들을 고무시켜 긴 여행의 위험을 용감하게 뚫고 대서양을 건너가게 하고, 황량한 들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위험을 견디어내게 하고, 마침내 신대륙 해변에 큰 나라의 기초를 세우게 한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
이들은 버지니아 주식회사와 몇몇 상인들로부터 식민지 경영의 허가증과 자금을 받아들고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두 달간의 힘든 항해 끝에 원래 예정했던 지점보다 훨씬 북쪽인 케이프 코드에 도착했다. 1620년 11월 11일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도착한 곳은 너무 북쪽이어서 어느 누구도 본격적으로 탐험하거나 특허장을 받아든 일이 없었다. 이들은 배에서 내리기 전 ,전시민적 정치 공동체를 자체적으로 구성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것이 유명한 ‘메이플라워 협약’이다. 이에 따라 동료 중 존 카버를 지도자로 선출하고, 정착지에 종교적 자유와 인민 평등을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를 건설하기로 서로 간에 약속했다. 이것은 아마 역사상 시민들이 모두 참여한 계약에 의해 국가가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예가 될 것이다.
일단 희망을 갖고 배에서 내리기는 했지만, 그들이 이후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때는 마침 겨울이어서 북쪽의 사나운 추위가 몰아닥쳤고, 먹을 것도 태부족이었다. 결국 그해 겨울에 반수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불굴의 신앙적 열정으로 뭉친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이듬해 메이플라워 호가 본국으로 돌아갈 때 아무도 그 배를 다시 타지 않았다.
청교도들은 개혁의 의지와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개척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디언들로부터 옥수수와 밀의 경작법을 익혀 처음으로 가을 추수를 하게 되었다. 청교도들은 이듬해 자신들을 괴롭히던 인디언들을 초청해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바로 첫 추수감사절이다.
남미는 북미보다 열악한 환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 최강이지만, 남미는 여전히 빈곤과 혼란에 허덕이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렇게 설명한다. “북미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개척한 ‘감사의 땅’이다. 그러나 남미는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개척한 ‘탐욕의 땅’이다. 북미와 남미가 현격한 경제 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18세기 무렵 알래스카는 러시아의 관심에서 멀어진 땅이었다. 당시 알래스카를 영토로 인정하게 된 이유였던 모피무역이 시들해지고 크리미아 전쟁에 온 신경을 쓰느라 알래스카 문제는 러시아의 눈 밖에 있었다. 1860년 외적 팽창에 관심을 가진 미국의 국무장관 시워드는 알래스카 매입안을 상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상원은 1표 차이로 이 매입건을 비준했다. 매입가는 720만 달러. 그러니까 땅 1에이커가 2센트였던 셈이다.
헐값에 땅을 매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19세기에 금광이 발견되고 20세기에 거대한 석유매장 사실이 확인되면서 알래스카는 미국의 보물이 되었다. 한 각료의 선견지명이 세계사를 바꾼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제로 베이스 사고’였다. 다시 말해 기존 가치관이나 자신의 주관적인 잣대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말한다. 즉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를 발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경험과 습관으로 자기만의 ‘사고 틀’을 만든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에 봉착하면 자신이 가진 이 사고의 틀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해결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제로 베이스 사고’이다. 제로 베이스 사고란 한 마디로 ‘백지 상태, 즉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14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구조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원점에서 사고하면서 숨 가쁘게 혁신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제로 베이스 리더십’의 실천가로 규정한다. 제로 베이스 사고를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라는 열린 사고다. 그의 경영철학의 출발점은 ‘모든 것을 원점에서 시작하라’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근대 과학혁명을 무지(無知)의 혁명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인간의 고백이 바로 근대 과학혁명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뉴턴이 우주의 이치를 알았더라면, 다윈이 생명의 기원을 알았더라면 근대 과학혁명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몰랐기 때문에 그들은 관찰했고, 탐험했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경험을 맹신하면 함정에 빠진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면 변화의 바람을 놓치기 쉽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란 없다. 과거의 ‘사고 틀’과 결별하라. 제로 베이스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