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이렇게 인물이 없나.”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은 한 지인이 푸념하듯 한 말이다. 그는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고민이라고 했다. 누구에게 표를 줄 것인가가 아니라 투표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한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어느 정당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다. ‘최선’이 없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그마저도 없단다.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올해 대선은 ‘리턴매치’로 치러지게 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대결이다. 첫 대결이었던 2020년 선거에서는 바이든이 이겼으니 트럼프로서는 설욕전인 셈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리턴매치’의 흥행은 출전 선수들의 인기에 비례한다. 과거의 명성만으로는 흥행에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데 올해 대선 리턴매치 출전 선수들의 인기가 별로다. ‘538’이라는 여론조사 사이트에 따르면 두 후보 모두 비호감 비율이 더 높다. 뻣뻣한 걸음걸이에 잇단말 실수, ‘기억력은 나쁘지만 악의없은 노인’이라는 조롱에 가까운 말까지 듣는 81세 현직 대통령과 4가지 사건으로 기소됐고 민사 소송까지 쉴새 없이 법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77세 전직 대통령의 대결. 누가 이기든 4년간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이끌 수 있을까? 냉소적인 유권자들이 갖는 의문이다.
2022년 중간선거 직후 ‘바이든-트럼프 재대결 성사될까’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었다. 바이든, 트럼프 모두 출마를 공식화하기 전이다. 선거가 2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이런 예상을 했던 것은 양당 모두에서 차기 인물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2년의 세월이 흐르고 예상은 현실이 됐다. 별 저항 없이 두 사람 모두 손쉽게 본선 무대에 올랐다.
선거란 참 모를 일이다. 2년 전 중간선거도 그랬다. 선거 전에는 공화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중간선거는 야당의 시간인 데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워낙 낮았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연방 상하원을 모두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 탈환에 만족해야 했다. 그때 공화당 일부에서 나온 것이 트럼프 책임론이었다. 검증되지 않은 후보들이 ‘트럼프의 지지’만 등에 없고 나섰다 실패한 것이 원인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쉽게 ‘대선 후보’ 타이틀을 따냈다. 전직 대통령이 다시 대선에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희귀한 일이다. 191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112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한번 대선 후보로 나왔던 인물이 재도전하는 경우도 드물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 쟁쟁한 후보군이 새로 부상하고, 그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이 정계의 관례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치인 배출 구조는 상당히 합리적이다. 기초부터 다져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시, 카운티 등 로컬 정부 단위의 선출직으로 출발해 주, 연방으로 범위를 넓혀 간다. 많은 정치인이 주민들과의 접촉면이 넓고 즉흥 연설에 능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른 길을 걸었다. 부동산 사업가에서 곧장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그가 대선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런 사업가적 기질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정치 문화보다는 비즈니스 환경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한다.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정치 문화를 따를 이유도, 정치적 경쟁자를 배려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반면, 바이든은 카운티 의원에서 시작해 연방상원의원, 부통령 등을 거쳐 대통령까지 올랐다. ‘엘리트 정치인 코스’를 밟아온 셈이다.
올해 대선에 관심이 없다면 ‘정치인 vs 사업가’ 구도로 후보의 공약을 분석해 보는 것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