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법조계와 의학계는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결로 인해 대혼란이 벌어졌다. 앨라배마주 대법원이 “냉동 배아도 태아”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러하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많은 난임부부들은 병원에서 시험관 시술을 하곤 한다. 이 시술은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 난자 여러개를 채취해 냉동보관한후, 인공수정한 배아를 모친의 자궁에 이식하면 임신이 되는 것이다. 임신후 남은 배아는 병원에서 폐기한다.
그런데 앨라배마주의 한 병원에서 실수로 냉동 보관중인 배아 몇개를 폐기했다. 그러자 세 부부가 병원을 상대로 “인공수정된 배아도 태아이며, 따라서 아동 과실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소송한 것이다. 이에 대해 앨라배마 대법원은 “태아는 발달 단계, 신체적 위치에 따라 예외없는 아기로 간주해야 한다. 따라서 냉동 배아도 아기와 똑같은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파장은 의료계에서 먼저 터졌다. 앨라배마주 대다수의 병원과 난임 클리닉이 “시험관 아기 시술을 중단한다. 환자나 의사가 형사고발이나 민사 소송을 당할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당장 앨라배마주 전체의 난임부부들이 시험관 시술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병원도 처벌이 두려워 난임 시술을 꺼리게 되었다. 주의회는 이 판결에 맞춰 부랴부랴 현행 임신 관련법을 개정하는 촌극을 벌였지만, 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앨라배마 판결은 법복을 입은 판사 몇명이 난임시술과 같은 여성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처벌할수 있음을 보여준다. 상식적으로 봐도 “아직 어머니의 자궁에 들어가지도 않은 병원 냉동고 속의 배아도 아기”라는 판결은 이해할수 없다. 대법관들은 판결문에서 “신은 인간을 자신의 형상에 따라 창조하였다”는 성경문구까지 집어넣어, 이번 판결이 법률이 아닌 보수적, 종교적 신념으로 결정되었음을 암시했다.
연방대법원이 2022년 돕스(Dobbs) 판결로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을 폐지한 후, 법조계와 정치권의 여성 인권 제약은 심각해지고 있다. 비영리단체 ‘시스터 송’ (Sister Song)의 모니카 심슨(Monica Simpson) 사무총장은 “낙태권 폐지 판결은 여성 보건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6개월동안 낙태한 산모 5명중 1명은 처벌을 피해 낙태 합법화주로 가서 시술을 받았다. 임신이나 낙태에 대해 법적인 제약이 많아진 것이다.
자녀를 낳은 후에도 여성들의 고민은 계속된다. 여성의 소득이 남성에 비해 낮기 때문에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가정주부의 연 소득은 2만300달러에 불과하다. 직장에 다니는 여성도 출산, 육아휴가나 병가를 받기가 힘들다. 전국가정주부연합의 아이젠 푸(Ai-Jen Poo) 회장은 “자녀 양육과 부모님 간병 등의 부담을 둘다 안고 있는 가정주부가 1천100만명에 달하는데, 제도적 지원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차원에서도 여성 정치인에 대한 위협이 심각하다. 뉴욕대 로스쿨 브레넌 정의센터(Brennan Center for Justice)에 따르면 정치인 3분의 1이 언어적, 물리적 폭력을 겪어봤으며, 이중 80%는 여정 정치인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 여성 정치인의 절반 이상이 선거 출마를 꺼린다고 답했다.
앨라배마주처럼 보수적인 조지아도 언제 이런 식의 여성 인권 침해 판결이 나올지 모른다. 보수, 극단화된 최근 정치는 역설적으로 여성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중간선거에서도 여성의 투표 참여가 선거의 승부를 갈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인 여성유권자들도 올해 투표에 참여해 여성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