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째
새벽길에 달은 없고 별만 있다. 카미노 내내 느끼는 것인데 여기는 별이 많지가 않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는 셀 수가 없이 많은데, 여기는 셀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엄청나게 빛난다.
계속 산티아고를 향하여 간다. 가는 길에는 큰 도시도 있고, 작은 마을도 있다. 대성당과 수도원, 묘지도 있다,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고, 로마 시대의 거리도 있다. 와이너리도 많다. 이런 길을 걷는다. 평탄한 길, 험한 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인생길과 같다.
기타를 메고 가는 순례자
18일째를 걷고 있다. 순례자들이 줄 듯도 하건만 그렇지 않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언제나 그대로다. 홀로 걷는 사람, 둘이 걷는 사람, 개와 걷는 사람, 말을 타고 걷는 사람….
레온에 도착했다. 레온은 이정표의 도시다. 500km를 걸었고 300km를 남긴 곳. 1시간 도심을 뚫어야 숙소에 도착한다. 주교좌 성당을 지난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크기. 그러나 문은 닫혀 있었다. 스페인은 가우디를 먹고산다 하더니만 주교좌 성당 옆에는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이 있다. 역시 사진 한장 찰칵!
레온에 있는 주교좌 성당
가우디가 설계한 건물.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레온에서는 점검을 한다. 500km를 걸었으니 현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몸 상태, 살이 많이 빠졌다. 챙겨 먹는다고 했지만 워낙 걸어대니 살이 빠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헐렁헐렁. 다리는 안녕하시고 근육이 더 붙었다. 배낭도, 신발도 앞으로의 300km, 문제없다. 양말이 문제다. 떠나올 때 4켤레를 가져 왔다. 1주 전인가 구멍이 심하게 나서 하나를 버렸다. 오늘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 2켤레를 가지고 버틸 수 있을는지.
한창 걷고 있을 때, 지나가는 순례자가 묻는다. “내가 지난 10일을 보아 왔는데, 두 손을 모두고 길을 걷는데 뭐 하시는 분이요?” 지금은 알베르게 구석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지나가던 한국인이 묻는다. “소설가세요?” 그래, 은퇴도 했겠다, 그 길로 나가보련다.
양말 4켤레
# 19일째
작은 도시를 통과하는데 운이 좋게도 스포츠 용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 양말 4켤레를 샀다. 이 사소한 일이 얼마나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지! 양말 4켤레가 마르고 닳도록 걸어야겠다.
한 성당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꼭 이만한 사이즈. 내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영원히 잊지 못하는 곳! 그곳이 떠오른다. 트레폰테나 수도원. 지금은 수도원의 되어 있지만, 그곳은 그 옛날, 사도 바울이 참수를 당한 곳이다. 그 안에는 기둥과 같은 도마가 있다. 그 위에 사람의 목을 올려놓고 도끼로 찍어서 참수했다. 바울의 목은 땅에 떨어져 3번을 튀었고, 그 튄 곳에서는 샘이 솟았다. 그래서 그 수도원의 이름을 트레(three) 폰타네(샘)라고 한다.
얼마나 가고 싶었는지 뼈에 사무쳤다. 그러다가 어렵게, 어렵게 갈 수 있었다. 때는 가을이었다. 8명의 수도사가 수도하고 있었다. 가을바람 속에서, 수도사들의 챈트를 들으면서 그곳을 거닐었다. 사도 바울의 삶과 죽음이 묵상 되었다.
트레폰타네 바울 생각나게 한 작은 성당
바울의 삶은 한 줄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신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참수를 당하는 순간. 목을 드리우고 도끼를 기다리는 그 마지막 순간에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내 앞에는 면류관이 기다릴 것이다.”
순례길은 도시로도 이어진다. 이런 조형물이 이채롭다.
가을바람은 소소히 불어오고, 저 멀리 수도사들의 챈트는 들려오는데, 사도 바울의 삶과 죽음이 말씀이 되어 쏟아져 내려왔다. 엄청나게 쏟아졌다. 견딜 수 없었다. 무릎을 꿇었다. 엎드렸다. 그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똑같은 마음으로 이 성당 앞에 섰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읽을 수는 없지만, 이보다 더한 사연이 있을 거라 믿으며.
나는 역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책이건 소설이건 역사에 관계된 것은 많이 읽었다. “왜 역사를 공부하는가?” “역사를 만들려고.” 그렇다! 역사는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것 아니다. 소박하게, 아주 소박하게, 오늘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걷고, 오늘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사는 것으로 역사는 만들어진다. 오늘도 나는 역사를 만들었다. 〈계속〉
글·사진=송희섭 애틀랜타 시온한인연합감리교회은퇴목사
스페인 산타아고 순례길 여행 팁
# 어떤 길을 걷나?
산티아고 순례길 이름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다. 산티아고는 스페인 북쪽에 있는 큰 도시다. 이 도시 안에 콤포스텔라라고 하는 성당이 있는데, 그 성당 지하에 사도 야고보의 유골이 있다. 이 유골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을 보고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 하는데, 그게 스페인 말로 카미노(Way) 데(of) 산티아고(Santiago)다.
산티아고까지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북의 길, 은의 길, 클래식 길 등 수 많은 길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길이 프랑스 길이다. 1년에 30만 명이 순례에 나서는데, 90% 이상이 프랑스 길을 걷는다. 프랑스 길은 프랑스 상쟁 피에드포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km의 길이다. 보통 하루에 20km씩, 40일을 잡는다.
# 어떻게 준비하나?
순례길은 철저한 준비가 필수다. 배낭과 신발, 슬리핑 백, 속옷과 양말, 그리고 개인용품 등을 챙겨야 하는데, 자기 몸무게의 10%를 넘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앱을 까는 일이다. Buen Camino, Camino Ninja, Wise Pilgrim 등 좋은 앱이 많다. 이 앱으로 가는 길을 미리 그려보면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구글맵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800km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준비해야 한다.
# 잠은 어디서 자나?
알베르게라는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가 있다. 공립과 사립, 두 종류가 있다. 공립은 1~2유로 저렴하다. 그러나 예약이 되지 않고, 먼저 온 순서대로 이용해야 한다. 사립 알베르게는 공립보다 살짝 비싸기는 하지만, 예약이 가능하다. 나는 하루 전에 부킹닷컴(booking.com)을 통해서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