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엄격한 가정교육…한동안 드럼 연주한 게 일종의 반항”
인터뷰한 석지영 교수 “‘나쁜 기억력’ 반박할수록 바이든 기소 위험 커져”
조 바이든(81) 대통령의 기밀문서 유출 의혹을 수사한 로버트 허(51) 전 특별검사가 정치적으로 공격받을 게 뻔히 예상됐던 특검직을 수락한 배경에 대해 한국계 이민자 가족으로서 “내 가족과 내가 이 나라(미국)에 진 빚이 있기 때문”이라고 시사주간지 뉴요커 인터뷰에서 말했다.
24일뉴요커에 따르면 허 전 특검은 뉴요커 기고가인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때 미국과 미군이 아니었다면 부모님과 내 인생 모두 매우 달라졌을 것”이라며 이처럼 말했다.
허 전 특검이 언론에 공개되는 인터뷰에서 소회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 전 특검은 또 “미국 법무부 장관이 누군가가 불편한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게 만약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윤리적이면서 도덕 잣대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일을 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특검 임명이 발표됐을 때 주변 지인들은 지지와 함께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어려운 일을 수행했다고 보상받기는커녕 어떤 결론이 나든 공화·민주당 어느 한쪽에서 불만을 제기할 게 뻔히 예상됐던 탓이다.
허 전 특검은 “나는 그저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며 “(공화당 당적이 있지만) 특별히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나 신념이 있지는 않다”라고 했다.
로버트 허 특검이 의회 청문회에서 진술하고 있다. 로이터
허 전 특검의 집안 분위기는 어려서부터 엄격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마취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그는 “한국식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며 “집안 분위기는 엄중했고 탁월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즐거움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 때문에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명문 하버드-웨스트레이크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아웃사이더로 지냈다고 했다.
그는 “한동안 드럼 연주를 하기도 했는데, 그게 내겐 일종의 반항이었다”라고 말했다.
의회 청문회에서 보인 금욕주의자적 모습과 달리 그는 사석에서 활기차고 유머감각 있는 성격이라고 석 교수는 전했다.
앞서 외신들은 지난 12일 미 연방 하원 청문회에서 허 전 특검이 수사의 공정성을 둘러싼 여야 의원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빈틈없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허 전 특검은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때 기밀문서를 유출·보관했다는 의혹에 대해 범행 의도성에 대한 증거가 없다며 불기소를 권고했다.
그는 만약 바이든 대통령을 기소할 경우 “배심원단이 그를 ‘동정심이 많고, 선의가 있으며, 기억력이 나쁜 노인’으로 인식할 것”이라고 말해 백악관의 분노를 샀다.
허 전 특검은 “보고서는 로스쿨 학생이나 일반 대중, 의회를 위해 쓴 게 아니다”라며 “보고서는 경험 많은 검사 출신인 법무장관을 위해 작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버트 허 특검이 12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기밀 문서 처리 조사에 대한 하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출연한 기자회견을 듣고 있다. 로이터
한편 법학자인 석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2017년 자서전 작가에게 기밀문서를 언급한 사실이 있다는 점에 비춰볼 때 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나쁜 기억력’ 논리로 기소를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백악관이 허 전 특검의 보고서를 공격하면 할수록 향후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집권 시 바이든이 기소될 위험이 커진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날카롭다고 얘기할수록 그가 기밀문서를 의도적으로 보유해 유죄임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계인 허 특검은 1973년 뉴욕시에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영어와 미국문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그는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메릴랜드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하며 조직 폭력, 마약 밀거래, 불법 무기 소지, 화이트칼라 범죄 등 다양한 사건을 맡았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에 의해 메릴랜드주 연방지검장으로 임명돼 이듬해 4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지검장직을 수행했다.
그는 지난 12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하기 전 특검직에서 사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