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 방지 안전장치 충분했는지 의문…설계기준 넘는 충격 가해졌을 가능성”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항의 대형 교량이 선박 충돌 후 불과 수십초 만에 무너져 내린 것은 설계 당시 적용된 구조적 충격 흡수력을 넘어서는 극단적 충격이 가해졌기 때문일 수 있다는 전문가 진단이 나왔다. 이 밖에도 충돌 방지 안전장치가 부족했을 수 있다는 지적, 오염된 연료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가설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된다.
▶선박 충돌 방지 장치 적절했나= 볼티모어항의 2.6㎞ 길이 아치형 트러스교인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는 26일 새벽 짐을 가득 실은 싱가포르 선적의 대형 컨테이너선 ‘달리’호가 교각을 들이받으면서 붕괴했다. 이 사고로 다리 위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8명이 추락했으며 이 가운데 6명이 실종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사의 원인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충돌 방지 안전장치가 충분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다리 밑바닥인 교반을 보호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인 ‘돌핀(dolphin) 등이 없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로 치면 가드레일 역할을 하는 돌핀은 선박의 충격을 흡수하고, 선박의 속도를 줄이거나 선박이 교량에 바짝 근접하지 못하도록 방향을 바꾸는 역할을 해 일종의 교량 보호물로 작용한다. 최신 교량에는 이 돌핀이 사용된다고 한다. 영국 왕립 공학 아카데미의 로버트 베나임 연구원은 이번 사고는 다리 기둥 주변의 선박 보호 장치가 “불충분”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1977년 완공된 노후화된 다리= 프랜시스 스콘 키 브리지가 초대형 컨테이너선 시대 이전에 설계돼 이번 충돌로 인한 충격을 버티지 못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머스트 매사추세츠대(UMass) 샌제이 R. 아워드 토목공학과 교수는 NBC 뉴스에 “교량은 선박 충격을 견디도록 설계되며 그것이 전형적인 설계 절차”라며 “하지만 모든 구조물과 공학 시스템에서는 구조물의 설계를 넘어서는 사건이나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번 일이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워드 교수는 “현대에 건설되는 교량은 어떤 종류의 충격에 견딜 수 있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일단 이런 설계 기준이 정해지면 가장 극단적인 (충격)조건이 무엇일지도 이에 맞춰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버지니아공대의 구조 공학자인 로베르토 레온은 교량의 설계와 건설 과정에서 공학자들이 선박 충돌 등과 같은 ‘극단적인 사건’을 감안하지만, 볼티모어 교량이 건설될 당시에는 이번 사고를 일으킨 컨테이너선과 같은 크기의 선박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형태의 선박은 그 당시엔 실제로 (설계와 건설에) 고려되지 못했다”며 “따라서 프랜시스 스콧 키 브리지는 ‘상당히 보호받지 못했다'(fairly unprotected)고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사고 교량이 거의 반세기 전인 1977년에 완공된 노후 교량인 점에 주목했다. 교량 설계와 건설 기술이 지난 반세기 동안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오염된 연료 탓 선박 동력 잃었을 가능성= 오염된 연료 때문에 달리호가 동력을 잃고 다리에 충돌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당국이 사고 선박이 동력을 잃고 교량과 충돌하는 데 오염된 연료가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달리호는 교량과 충돌하기 전에 동력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동력 문제가 현재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달리호에 탑승했던 한 담당자는 “배의 동력이 끊기고 조타 장치와 전기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며 “엔진 하나가 털털거리더니 멈췄다. 엔진실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탄 연료 냄새가 났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해상 정전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발생하면 선박의 주요 사고 위험이 된다고 WSJ은 전했다.
해상 정전의 원인 중 하나로는 오염된 연료가 꼽힌다. 그리스의 조선 구조 전문가 포티스 파굴라토스는 오염된 연료는 선박의 주 발전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주요 원인이며, 선박에 정전이 발생하면 추진력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