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선교사 시절 심장병 아이 한국 보내 수술
당시 상황 지켜봤던 6살 아들, 지금은 심장전문의
# 20일째
오늘도 걷는다. “송~.” 걷는 중에 누가 부른다. 티노다.
호주 국적의 필리핀 사람. 오래전부터 만났다 헤어졌다 했던 순례자. 며칠 전에는 알베르게 같은 방에서 묵기도 했다. 그 티노를 여기서 만났다. 대화는 놀라움으로 시작했다. “필리핀, 어디 출신이냐?” “두마게티!” “우와- 두마게티!” 이게 웬일이냐? 그 많은 필리핀 사람 중에서 두마게티 출신을 여기서 만나다니!
두마게티는 필리핀, 네그로스 섬에 있는 조그마한 도시다. 나에게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내 인생의 랜드마크와 같은 곳! 왜 그러냐면 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부임을 했던, 첫 선교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두마게티 출신을 카미노 길에서 만나다니!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한참 후, 티노에게 물었다. “티노, 두마게티가 나에게 어떤 곳인지 알아?”
필리핀 두마게티에서 왔다는 티노(왼쪽)와 함께한 필자.
내가 마르셀을 처음 만난 것은 마르셀이 14살 때였다. 그때 마르셀은 늘 기침을 했다. 아주 심하게. 결핵에 걸린 줄 알았다. 아니었다. 심장병이었다. 선천성 심장병! 그런 마르셀을 한국에 데려다가 수술하기로 했다. 지난한 길이었다. 마르셀은 출생 신고도 되지 않은 유령 인간이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간신히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받아 한국에 데려왔다.
이번에는 의사가 난색을 표한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동맥과 정맥이 바뀌어 있고, 심장 안에 6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수술한다 하더라도 살아날 확률은 2%밖에 안 된단다. 죽으면 매장 문제가 생긴다고 난색을 보인다. 마르셀의 아버지 마가보가 사정을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수술하기로 했다. 마지막 걸림돌이 펌프의 문제였다. 심장이 너무 약해 펌프를 넣어야 한다. 펌프를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나, 일 년에 한 번씩 배터리를 갈기 위하여 한국에 와야 한다. 어차피 하나님께 맡겨야 할 수술이기에 펌프를 넣지 않기로 했다. 수술을 시작한다. 수술대 앞에서 모든 의료진이 손을 잡고 기도했다. 눈물겨운 기도였다. “하나님, 알아서 하십시오. 여기서 마르셀이 죽으면 당신의 선교사, 보따리 싸야 합니다.”
성공! 성공이다. 확률 2%의 수술이 성공이었다. 마르셀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후에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다. 이것을 내 아들이 보았다. 6살 먹은 꼬마가 이것을 보았다. “나도 커서 심장과 의사가 될 거야!”
32년이 흘렀다. 그때 6살의 꼬마는 38세의 장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심장 전문의가 되어, 현재 애틀랜타 노스사이드병원(Northside Hospital)에서 일하고 있다.
필리핀의 민족시인, 호세 리잘은 두마게티를 떠나게 되었다. 그 때가 스페인과 독립 전쟁 중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 적었다. “두마게티, 내 마음의 고향 두마게티여, 내 너를 떠난들 내 어찌 너를 잊을까?”
두마게티를 떠나던 날, 내 마음을 알아주기나 하듯이 나를 실은 비행기는 두마게티 상공을 크게 선회했다. 아래를 본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두마게티, 내 마음의 고향 두마게티여, 내 너를 떠난들 내 어찌 너를 잊을까?”
카미노 길 안내 문양.
# 21일째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21일째를 시작한다. 생각해 본다. 언제 이렇게 긴 길을 걸어 보았는가? 언제 이렇게 긴 시간을 침묵으로 보내본 적이 있었나? 갑자기 시간이 새로워지고, 머무는 이 공간이 신선해진다.
해가 중천에 떴다. 시장하다. 오늘은 스파게티를 먹고 싶다. 전에 프란시스코 수도원을 찾아 아시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코너를 도는데 오른쪽으로 무너진 성이 있었다. 그 지하에 레스토랑이 있었고 거기서 점심을 했다. 이 레스토랑은 백여 년 전부터 이곳을 방문하는 수도사와 순례자가 식사했던 곳이었다.
나는 그때의 스파게티 맛을 잊지 못한다. 속에서 굵고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세상에! 음식을 먹으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그 뒤 어디를 가든지 그 맛을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카미노 길에서도 찾지 못했다. 오늘은 찾을 수 있을까 했는데, 역시 아니다. 카미노가 끝나기 전까지 찾았으면 한다.
프란시스코 수도원을 생각나게 해 준 스파게티.
길을 걷는다. 눈에 익은 사람들이 보인다. 요하네스 모자다. 스웨덴 사람들. 젊은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카미노를 하고 있다. 68세의 어머니 모니카는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이 잘도 걷는다. 둘은 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있었다. 멀리서도 노랫소리가 들린다. 너무나 귀에 익은 노래, 그리고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 솔베이지의 노래! 스웨덴어로 부르지만 그 가사가 전해진다.
“그 겨울이 지나 봄은 오고/ 그 봄은 가고 또 가고/ 여름도 가고 또 가면/ 더불어 세월도 간다./ 세월이 가면 그대는 오겠지./ 약속한 대로 그대는 오겠지.”
나도 허밍으로 함께 불렀다.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올라온다. 진하게 올라온다. 왠지 모르는 그리움이!
글·사진=송희섭 애틀랜타 시온한인연합감리교회은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