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사회 속 극심한 고립감·정신적 위기 직면
체면치레 중시 문화 탓 가족간에도 금기시
퀴어 청소년 대화통해 소외감 벗어날 수 있어
침묵과 종교적 신념 강요하는 문화 바뀌어야
“저는 대형 한인 교회에서 성장한 양성애자이고, 한국인이자 미국인입니다. 교회는 제가 미국에서 한국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인 친구를 사귀고 싶었지만 적응할 수 없었습니다. 퀴어(Queer)와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 중 하나는 포기해야 했어요.”
5월은 아시아·태평양계 유산의 달이자 정신 건강 인식의 달이다. 아시아계 중에서도 성소수자 청소년은 심리적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가장 큰 그룹이다. 성소수자 보호단체 ‘트레버 프로젝트’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아태계 성소수자 청소년의 40%가 최근 1년간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 또 이들의 41%는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부모에게 숨긴다. 전체 청소년 성소수자 중 부모에게 숨기는 비율 29%보다 높은 수치다.
최근 화상 인터뷰에 응한 조지아 청소년정의연합(GYJC) 소속 아시아계 성소수자 3명은 “유년기에 겪는 차별과 외로움은 학교 시스템의 무대응과 가족의 편견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귀넷 카운티에 사는 한인 2세 A씨는 조지아 최고의 명문인 귀넷과학기술고등학교(GSMST) 학생이다. 그는 “학교 점심 테이블에서 백인 성소수자 친구를 만나거나, 아시아계 친구를 만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아시아권 출신 게이를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밝혔다.
투명인간처럼 느껴지는 경험은 외로움을 낳는다. 그는 “자신을 지지해줄 커뮤니티가 없다면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고 생각하거나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풀턴 카운티에 사는 중국계 B씨 역시 청소년기 주변 커뮤니티의 부재로 자신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업 성취에 매진하는 전형적 아시아 학생그룹에도, 연극이나 밴드 활동에 몰두한 백인 퀴어 그룹에도 속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친구들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았다”는 인식 때문에 혼자라는 생각이 잦았다. 그가 자란 존스크릭과 알파레타 등에는 아시아계 인구가 많았지만 동성애 문화에는 포용적이지 않았다.
학교 밖 환경도 마찬가지다. 노크로스에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 권익증진 비영리단체 어드보카스 펀드(AAAF)에서 일하는 중국계 C씨는 가족들마저 ‘비정상’에 적대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바나에서 성장한 그는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국계 커뮤니티는 다른 아시안 사회처럼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퀴어’ 같은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말씀하신 그의 어머니처럼 지역사회에서 도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화두는 가족 내에서도 금기시되곤 했다.
이들은 정신건강 취약 계층임에도 의료기관 문을 두드리는 일은 쉽지 않다. C씨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약을 복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아시안 부모가 많고, 더욱이 정신 건강은 약 처방이 필요한 병으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담 경험이 다수 있다고 밝힌 A씨는 “상담사를 만나도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이민 가정의 특수한 내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가족 관계를 차단하라’는 조언을 듣기도 한다. 또 한인 상담사의 경우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기도 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들은 아시아계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을 위해선 ‘침묵’을 강요하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C씨는 “아이들은 질문을 통해 성장한다”며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퀴어 청소년은 친구와 부모, 상담사와 자신의 정체성(지향성)에 대해 대화해야 소외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B씨 역시 “우리가 상호 연결돼 있다는 인식이 정신 건강 증진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며 “유일한 해결책은 많은 아시아계 성소수자가 노출되는 것”이라며 성소수자 가시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