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상처를 품어 안고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는 고목을 그리다 보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느껴진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가지들을 그려 나가는 붓 끝에는 지나온 삶의 순간들이 묻어 올라온다.
여기저기 잘려 나가 아문 상처는 다시 피어나지 못하고 단단한 옹이가 되어 있다. 그 옆을 뚫고 나온 가느다란 가지 끝에 달려 있는 잎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아 연초록 속으로 빠져들게도 한다.
고고하고 당당하게 완성되어 가는 자태를 보고 있으면 숙연해지는 마음에 나무를 자꾸 그리게 된다.
나의 나무들은 사계절 내 안에 각인된 그림들이 있었다.
봄이면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터져 나오는 새 생명들, 여름이면 흐드러진 잎들이 장맛비에 맞춰 웅장하게 연주하는 격한 풍경들, 가을이면 저마다의 짙은 색으로 치장한 축제들, 겨울이면 헐벗은 가지 위로 내리는 추위를 온몸으로 견디며 봄을 준비하는 인내의 시간들. 오랜 시간 익숙한 그 풍경들은 뿌리내리는 내 삶의 일부였다.
나는 한동안 두고 온 고향의 뒷산과 우거진 숲, 시골집 동내 입구를 지키고 있던 고목이 그리워했다. 내가 살았던 엘에이의 날씨는 건조해서 내 고향의 나무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겉모습처럼 풍경도 낯설게 다가왔다. 메말라 보이는 엘에이의 거대한 산, 그 속이 궁금했던 건 고향에 두고 온 고목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을까.
호기심으로 시작된 산행은 서투른 내게 쉽게 길을 내어주지는 않았지만 고통도 감수하고 두 해가 넘도록 산을 다녔다. 숨을 곳 없는 햇살이 등을 달구던 여름날에도, 시린 겨울 찬바람 속에 하얀 눈 내리던 날에도 쉬지 않았다. 매번 바뀌는 풍경과 그 속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무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산에 오르며 들었던 물소리는 아이들과 첨벙거리던 고향 뒷산의 계곡을 연상시켰다. 산 등선을 따라 걷다가 잠시 쉬는 나무그늘은 어릴 적 발자국이 되어 떠오르기도 했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 만난 고목은 든든한 아버지로, 때로는 엄마의 품속이 되기도, 때론 친구처럼 다가왔다. 나와 마주하는 시간들을 지나 힘겹게 오른 산 정상에서 만난 고목은 나를 기다렸다 말하고 있는 듯 자리를 내어 주었다.
다리의 후들거림과 힘겨웠던 가쁜 숨을 할머니 품속 같은 따뜻함으로 수고했다며 토닥여 주고 있었다. 그건 살면서 힘들었던 순간들에 대한 위로였으며 격려였던 것이다. 내 속에 숨어있던 타국생활의 외로움에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이다.
삶의 아픔과 상처 난 시련들을 나이테 속에 숨기며 버티고 선 고목은 겹겹이 굵어지고 뒤틀어졌다. 척박한 땅 속으로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힘겹게 버티고 서 있는 듯 보였지만 당당했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와 삶의 깊이를 말하는 듯했다. 떨어져 나간 몸뚱이들은 오가는 이의 휴식이 되어주었던 자신의 분신을 곰 삭이며 땅 속 거름으로 돌려보내고 있었다.
잘리고 비바람에 쓸려 반질반질해진 몸을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쓰다듬으니 메마른 가지가 부드럽게 다가와 나를 감싸 안았다. 잠깐 눈을 감고 기대어 꿈을 꾸었다.
그 속에서 나는 인내를 배우고 타국에서의 삶을 위로 받았으며 더 넓은 세상을 만났다. 척박한 날씨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가르침 같았다. 내게 낯설었던 그 풍경 속의 고목들이 이제는 또 다른 나의 안식처가 되어 있다.
내게 다가왔던 나무들은 내 그림속으로 하나씩 들어와서 다시 나를 만나고 있다. 등 굽은 할머니 모양으로 손을 흔들기도 했다. 굵은 몸통에 비해 몇 안 되는 가지만 남아 혼신의 힘으로 잎을 피워내는 생명의 끈질김과 소중함을 알려주고 있다.
깊은 뿌리가 내리기까지 인고하며 살다가 마지막이 언제인가를 알고 아낌없이 자연에 고스란히 주고 가는 고목은 나의 스승이다. 나는 내 그림 속 나무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아직도 그 자리에서 세상 잘 바라보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