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불의의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실종된 지 하루만인 20일 오전 결국 사망이 확인되자 이란은 충격에 빠졌다.
AP, AFP 통신에 따르면 수도 테헤란 곳곳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문 가판대에서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타전하는 호외를 사 들고 망연자실해 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식당 주인과 손님들은 자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생방송으로 전하는 TV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했다.
전날 오후 헬기 사고 소식이 타전된 직후부터 각기 광장이나 모스크로 모여들어 탑승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도했던 시민들은 충격과 실의를 추스르지 못했다.
테헤란에 거주하는 에스마일 미르바히비는 라이시 대통령에 대해 “나라 전체에서 인기가 높았던 인물인 그를 대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의 빈자리가 클 것 같다”고 애도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사망을 애도하는 시민이 헌화하고 있다. 로이터
베흐자드 모하마디는 사고 뉴스를 봤을 때부터 라이시 대통령의 안위가 걱정돼 한숨도 자지 못했다며 “그의 운명이 결국 순교라는 것이 슬프다”고 말했다.
이란 현지 언론은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이란 주요 도시 곳곳에서 추모 기도회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오후엔 테헤란 중심가인 발리아스르 광장에도 추도객들이 운집하기 시작했다.
반관영 메흐르 통신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광장으로 이어지는 대로 구석구석이 인파로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시민들은 광장 곳곳에서 검은색 깃발 주변에 모여 이슬람 경전 쿠란 낭송을 경청했다.
검은색 차도르를 뒤집어쓴 채 흐느끼는 여성들도 다수였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 광장으로 향하던 노인 샤히드 라제이는 “사고 소식을 듣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라이시 대통령을 잃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하고 오열했다.
2022년 11월 4일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미국의 이란 추방 43주년을 맞아 연설하고 있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생전 모습. 로이터
하지만 일각에서는 2022년 시작된 히잡 시위의 유혈진압과 장기간 지속된 경제난과 민생고로 커져 온 강경 보수파 정부에 대한 불만도 감지됐다.
테헤란 시민 마흐루즈 모하마디 자데흐는 “라이시 대통령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민을 위해 필요한 만큼 노력을 기울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앞으로 5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란 스포츠청소년부는 라이시 대통령 등 사망자들에 대한 추모 차원에서 이번 주 프로축구와 레슬링 대회 등 모든 체육 경기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란 문화종교부는 앞으로 7일 동안 모든 문화·예술 활동이 중단된다고 밝혔다.
라이시 대통령의 장례식은 오는 22일 테헤란에서 열린다.
라이시 대통령은 전날 오후 북서부 동아제르바이잔 주(州)에서 열린 기즈 갈라시 댐 준공식에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과 함께 참석한 뒤 타브리즈의 정유공장 현장으로 향하던 중 변을 당했다.
그가 탑승한 헬기는 아제르바이잔 국경에서 가까운 디즈마르 산악지대에 추락했다. 동승했던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 등 9명 전원이 숨졌다.
2024년 5월 7일 이란 테헤란에서 TV 인터뷰를 하는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로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