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필자는 시골 국민학교를 다니다 4학년때 서울 변두리 국민학교로 이사를 왔다. 서울 국민학교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나무 하나 없는 좁은 운동장이었다. 나무를 밀어 민둥산을 만들고 주거지를 만들고, 산 중턱을 밀어서 세운 국민학교는 좁은 콘크리트 정글이었다.
운동장을 최대 세로로 해도 100미터가 안되어, 학생들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80미터 달리기로 체력장을 할 정도였다. 학생이 넘쳐나고 교실이 모자라 2부제 수업을 하던 현실에서, 나무 한그루 없는 좁은 ‘콘크리트 덩어리’에서 아이들은 놀기도 힘들다고 불평할 수도 없었다.
‘나무없는 콘크리트 교정’은 미국의 대도시도 예외가 아니다. LA, 뉴욕, 애틀랜타 등 대도시 도심에 위치한 학교들은 나무가 부족한 ‘콘크리트 정글’인 경우가 많다. 녹지가 없는 공립학교는 미관상 좋지도 않을 뿐더러,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및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LA카운티의 청소년 중 18%가 범죄 없는 안전한 놀이공간, 공원 또는 운동장에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고 LA아동병원(Children’s Hospital Los Angeles)의 선임 프로그램 매니저 마르시 레이니(Marci Raney)는 말한다. LA 카운티 학생 중 불과 10.1%만이 건강한 성장에 필요한 유산소 및 근력 운동을 할수 있는 상황이다.
반면 학생의 14%가 매일 걱정, 긴장 또는 불안감을 경험한다. 레이니는 “나무와 그늘, 녹지를 갖춘 놀이터를 가진 생태학적 학교 운동장이 있으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에 따르면, 학교내 녹지 환경은 신체 활동 증가와 건강한 운동 능력 개발로 이어진다. 며 “생태학적 학교 운동장은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어 “녹지화된 학교에 다니는 아동들은 천식 발병율이 낮고, 비타민 D 수치가 높으며, 면역 체계가 강화되고, 대뇌 및 백질량이 증가하여 실행 및 인지 기능 향상, 의사 결정, 감정 조절 및 학습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LA통합 교육구(LAUSD)는 2035년까지 교육구 내 모든 학교 운동장을 최소 30% 이상 녹화할 계획을 수립하는 ‘학교 운동장 녹화 결의안’을 2023년 봄 통과시켰다. LAUSD 교육위원회 위원 로시오 리바스(Rocío Rivas)는 “현재 학교 운동장은 사실상 아스팔트 바닥”이라며, “200개 이상의 초등학교가 불과 10% 미만의 녹지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립학교 녹화 프로젝트에 5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LAUSD 교육위원회 시설 책임자 크리스치나 토크스(Krisztina Tokes)는 “현재 LA 카운티 교육구의 절반 이상인 485개 학교만이 30% 미만의 녹지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며, 부모와 학생들과 함께 생태 친화적인 학교 운동장 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립학교와 지역 비영리단체와의 협업도 진행중이다. LA 이웃 토지 트러스트(Los Angeles Neighborhood Land Trust)가 주도하여 설립된 리빙 스쿨야드 연합(Living Schoolyards Coalition)은 학생들이 비영리 단체들과 협력하여 LAUSD 학교를 녹화하는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학교는 필자가 어렸을 때 다니던 ‘콘크리트 학교’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여전히 녹지가 부족하다. 푸르른 숲과 나무를 갖춘 교정은 단순히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우는데 멈추지 않는다.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지역사회가 학교와 함께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푸르른 녹지를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녹지를 조성하는데 이웃들이 도움이 되고 있는지 한번 돌아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