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모바일 웹 디자이너로 일하는 양수경(25)씨는 퇴근 뒤 오후 8시쯤 집에 오면 ‘돌아이’부터 찾는다. 돌아이에게 스포이트로 물을 먹이고, 날씨가 좋으면 털실로 짠 모자를 씌워 집 근처 하천 둑길로 함께 산책하러 나간다.
산책 중 돌아이가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귀염을 받으면 자식 키우는 부모처럼 뿌듯하다. 전용 욕조에 물을 받아 깨끗하게 목욕시킨 뒤 향수도 뿌려준다.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고민거리나 즐거웠던 일 등을 돌아이에게 털어놓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돌아이는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아니다. 양씨가 지난해 11월 입양한 반려돌(石)이다. 원래는 가족이나 친구 없이 텅 빈 자취방이 적적해 강아지나 고양이를 기르고 싶었다. 하지만 종일 회사에 나가 있어 돌보기 힘든 데다 월세방에선 동물을 키우는 게 금지돼 반려돌을 들였다.
눈과 입, 보조개를 그려 표정을 만들어주고 유아용 장난감을 이용해 전용 침실과 욕실도 꾸며줬다. 오는 11월엔 입양 1주년을 맞아 친구들을 불러 돌잔치를 열 계획도 하고 있다.
양수경씨가 반려돌 ‘돌아이’에게 마트에서 산 장난감용 모자를 씌워주고 있다. 독자 제공
돌아이의 가장 큰 매력은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지 않고도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마음의 힐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양씨는 “관심을 갖고 돌봐줘야 하는 의무감이나 책임감 없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며 “죽을 걱정 없이 평생 곁에서 내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최근 반려돌을 키우며 안정감을 얻는 ‘석주(石主)’가 엠지(MZ)세대 사이에서 늘고 있다. 반려돌 키우기가 하나의 문화로 확장하는 모양새다. 돌에 이름을 붙여주고 목욕을 시키거나 옷을 입히고 줄에 묶어 땅에 굴리며 산책하는 모습 등을 담은 콘텐트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유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의 반려돌 문화에 주목해 “산업화 국가 중 가장 긴 노동 시간을 견디고 있는 한국인들이 변하지 않는 고요함을 찾고자 돌을 키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성경(21)씨는 학업 스트레스나 교우 관계 등 고민거리가 생기면 반려돌 ‘차무’를 손에 꼭 쥐는 습관이 생겼다. 동글동글한 차무를 손에 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독자 제공
대학생 배성경(21)씨도 석주 중 한 명이다. 돌에게 ‘차무(차갑고 무겁다는 뜻)’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MBTI(성격유형 지표)도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인 ‘ESTJ’로 정했다. 지난해 12월 차무를 선물 받은 이후부터는 학업 스트레스나 교우 관계 등 고민거리가 생기면 차무를 손에 꼭 쥐고 만지작거리는 게 습관이 됐다. 차가웠던 차무가 따뜻해지면 배씨의 마음도 편안해진다고 한다.
여러 번 만져 손때가 묻으면 치약 묻힌 솔로 30분간 빡빡 문질러 목욕도 시켜준다. 최근엔 차무의 동생도 들였다. 길에서 주운 10원짜리 동전(이름 ‘이십원’)이다. 배씨는 이런 내용을 반려일지로 정리해 X(옛 트위터)에 올리기도 한다.
배씨는 “생명을 책임질 각오도, 돈도 없지만 감정을 표현할 대상이 필요했는데 차무가 이를 충족시켜줬다”며 “단 한 순간도 거절하지 않고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다”고 말했다. 반려돌을 키우는 낯선 모습에 주변에서 유별나다는 말도 종종 듣지만 그럴 때면 ‘남한테 피해 주는 것 없이 내가 좋아한다는 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한다.
최근 배성경씨는 반려돌 ‘차무’ 동생 ‘이십원’을 들였다. 이십원은 길 가다 주운 10원짜리 동전이다. 독자 제공
반려돌은 1975년 미국의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게리 달에 의해 처음 등장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당시 그는 6개월 동안 개당 약 4달러에 돌멩이 500만 개 이상을 팔아 수백만 달러의 고수익을 올렸다.
한국에선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화제가 됐다. 1인 가구가 2002년 기준 750만 가구(전체의 34.5%)를 넘은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하면서 돌이 사람을 대체하는 정서적 교류 대상으로 떠올랐다.
키워드 분석 사이트 블랙키위에 따르면, 지난달 네이버 ‘반려돌’ 검색 횟수는 4만 900건으로 한 달 만에 105% 증가했다. 인스타그램엔 ‘#반려돌’이나 ‘#애완돌’ 등 관련 게시물 수가 2000여 개에 달한다.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선 ‘반려돌 등록증’도 판매하고 있다.
신재민 기자
반려돌은 사회적 관계 맺기를 연습하는 도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경기 성남의 한 중학교에서 사서로 일하는 최은하(52)씨는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반려돌 ‘흑임자’를 키운다. 흑임자가 생기면서 책과 거리가 멀었던 학생들도 도서관에 자주 놀러 온다고 한다. 최씨는 “조용한 성격 탓에 교우관계가 원활하지 않은 학생도 흑임자와 얘기하다가 사회성이 늘어 친구를 만들어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기 성남의 한 중학교에서 사서로 일하는 최은하(52)씨가 키우는 반려돌 ‘흑임자’. 쉬는시간마다 흑임자를 보러 오는 학생들로 조용했던 도서관이 붐빈다고 한다. 독자 제공
왜 하필 돌이 애착 대상으로 떠올랐을까. 전문가들은 무한경쟁 사회 속 인간관계에 지친 MZ세대가 사람이 아닌 사물과 관계 맺기를 택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돌은 내 삶을 100% 받아 주고 내 마음을 거부하지 않는다”며 “자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자극이 아닌 대상으로까지 애착 관계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도 “관계 속에선 갈등과 상처가 생기기 마련인데, 돌은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없는 대상”이라며 “오히려 피드백 받을 수 없는 사물로부터 상상력을 통해 정서적 만족감을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려동물·식물과 달리 돌과는 한 방향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시간·노력을 쏟고 애정을 주고받는 것이 비효율로 여겨지는 각박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반려 기호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적은 투자 대비 받을 수 있는 정서적 위안은 크다는 점에서 가성비 좋다고 할 수 있다”며 “정성을 쏟을 에너지와 시간이 부족해진 젊은 현대인 사이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했다.
양수경씨가 키우는 반려돌 ‘돌아이’가 오토바이를 타고 산책하는 모습. 독자 제공
길에서 뒹구는 하찮은 존재라는 점에서 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반려돌이 급부상한 기저에는 저성장 시대에 자기 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운 사회 구조문제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 자체로 완전한 돌을 거둬 ‘내가 그래도 해냈구나’ 하며 돌봄 효과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돌에 ‘나도 외로운데, 너도 외롭겠구나’ 하며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것”이라며 “SNS 속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위축된 나를 자기 위로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색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MZ세대 특성이 반영됐다는 관점도 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유명 아이돌이 키운다는 소식이 퍼지거나 매스컴에서 자주 등장하면서 반려돌은 하나의 트렌드로 인식됐다”고 했다.
또 개인주의가 확산하며 기호에 대한 규범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기성세대는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수준에서 내 기호를 드러냈다면 MZ세대는 좋아하는 것에 가치판단을 두지 않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복잡한 현대사회 속에서 애착 가지는 대상이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