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피벗(Pivot·통화 정책 전환)’ 가능성을 연일 시사하고 있는 가운데, 대선 전 기준금리 인하에 반대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터뷰가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 당장의 통화 정책에 영향을 끼치긴 어렵지만, 향후 당선 시 Fed 독립성을 놓고 ‘불협화음’이 발생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일 공개된 블룸버그 비지니스위크와 인터뷰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어쩌면 그들(Fed)이 11월 5일 선거 전, (기준금리 인하를)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는 통화 정책 변경을 검토 중이라는 최근 Fed의 움직임과 대치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 인터뷰 공개 전날인 15일(현지시간) 파월 Fed 의장은 “최근 3개월 지표로 (물가 둔화에 대한) 추가적인 확신을 얻었다”면서 “물가 상승률이 2%로 떨어질 때까지 (기준금리 인하를) 계속 기다리면 너무 오래 기다렸음을 결국 깨닫게 될 것”이라면서 피벗 가능성을 재차 밝혔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터뷰는 지난달 25일에 이뤄졌기 때문에 이 같은 파월 의장의 발언과는 관계없이 이뤄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전 기준금리 인하에 반대하는 표면적 이유는 현재의 물가가 금리를 낮추기에는 여전히 높다고 봐서다. 같은 인터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물가 상승은 국가를 파괴한다”면서 “그들(Fed)은 금리를 낮추고 싶어하는 꿈을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물가가 높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비용을 낮출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비용이 낮아지면 물가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비용 인하 방법은 에너지 가격 하락이다. 특히 자신이 당선된 뒤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밀린 석유와 가스 등 전통적인 화석 연료 시추를 늘리면 물가도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높은 물가를 금리 인하 반대 이유로 내세웠지만, 정치적 계산이 따로 깔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대선 전 기준금리 인하가 경쟁자인 조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기준금리 낮추면 고금리로 인한 경제 부담이 줄면서, 경기가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이는 현직 대통령 지지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또 임기 내 ‘피벗’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시작한 고물가 전쟁에서 바이든 정부가 승리했다는 일종의 정치적 홍보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반대에도 불구하고, Fed의 기준금리 인하 스케줄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Fed가 과거부터 정치권 압박에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금리를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가 최근 발간한 ‘과거 미국 대선과 통화정책 간 연관 여부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 이후 시행된 13회 미국 대선에서 Fed가 특정 후보자를 고려해 금리를 결정한 것은 1972년 한 번뿐이었다. 보고서는 “예외적으로 1972년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고물가에도 불구하고, 아서 반즈 Fed 의장이 닉슨 대통령 재선 위해 금리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했다가 물가 통제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미 연임에 성공한 파월 의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의식할 가능성은 더 낮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날 공개된 인터뷰에서도 파월 의장의 임기를 보장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대선 전인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 트럼프 전 대통령 인터뷰 공개 이후 17일 오후 5시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가 예상하는 9월 기준금리 인하 확률은 93.3%로 압도적이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놓고 이견이 표출된 만큼, 향후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파월 의장과 갈등 관계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거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수차례 금리 등 Fed 정책에 불만을 표시하며 “파월을 해고할 수 있다”며 압박한 적이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돼 무역·이민 장벽을 높이고 재정 확장을 추구하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고, Fed가 기준금리를 다시 높게 유지하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할 것”이라면서 “이미 연임된 파월 의장이 굳이 대통령의 눈치를 볼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정부와 통화 당국의 정책이 따로 놀 수도 있다”고 했다.
한국 중앙일보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