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유세 중이던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후보가 피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연설을 중단하고 급히 오른손으로 귀를 감싸며 몸을 숨겼다. 곧바로 비밀 경호원들이 트럼프 후보를 에워싸고 부축하여 일으켰다. 얼굴에 핏자국이 선명한 트럼프 후보는 일어서며 주먹을 불끈 쥔 오른팔을 치켜들고 ‘Fight, fight’를 외쳤다. 관중들도 트럼프와 호흡을 맞추어 ‘Fight, fight, USA’를 유세장이 떠나갈 듯 연호하였다. ‘싸우자, 싸우자’였지 ‘힘내자, 힘내자’가 아니었다.
7월 15일부터 위스콘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트럼프는 피격 당시를 얘기하며 그 순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관중은 또다시 ‘fight’와 ‘USA’를 대회장이 떠나갈 듯 연호하며 열광했다. 이 또한 ‘싸우자’ ‘투쟁하자’라는 뜻이었지 ‘우리 힘 냅시다’가 전혀 아니었다. 한국의 TV 방송을 포함한 모든 언론도 ‘싸우자, 싸우자’로 인용 보도하였지 ‘힘내자, 힘내자’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개 ‘화이팅’은 ‘싸우자’가 아니라 ‘힘내자’ 혹은 ‘힘내세요’란 말로 쓰인다. 발음도 ‘파이팅’이 아닌 ‘화이팅’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화이팅’은 잘못된 발음이다. ‘fighting’을 ‘화이팅’으로 발음하면 미국인은 못 알아듣는다.
알파벳 ‘F’ 발음을 한글로 표기할 수는 없지만 발음은 할 수 있다. 아랫 입술을 윗니로 긁으며 발음하면 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F’ 발음을 제대로 못하고 보통 ‘ㅎ’으로 발음한다. Football을 후뚜볼로, Fan을 후앙으로, Fighting을 화이팅이라 한다. 이런 일본식 발음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우리가 ‘화이팅’이라 발음하는 것은 무조건 수정되어야 한다.
한편, 지난 2021년 9월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말 신생어 26개가 등재되었는데 ‘fighting (파이팅, 화이팅: 힘내자)’도 포함됐다. 영어 단어 ‘fighting’이 한국어 단어로 등재되었다는 것이 참 특이하고 예외적이다 싶어 깜짝 놀랐다.
등재된 내용을 보면 『fighting은 특히 한국에서만 격려하거나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로, ‘Go on!’ 또는 “Go for it!’의 뜻으로 쓰인다.』로 되어있다고 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이 말을 등재하기 전에 한국 국립국어원의 의견수렴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으나, 영어 단어 ‘fighting’을 새로운 한국말 단어로 등재한 것은 어쩐지 생뚱맞아 보였다.
2010년 무렵, 국립국어원에서 힘내자라는 의미의 ‘화이팅(fighting)’ 대신 ‘아자’란 말로 바꿔쓰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하지만 홍보 부족 탓인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대다수 한국 사람들이 ‘화이팅’을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말도 아닌 ‘fighting’을 원래 뜻인 ‘싸우자’ 대신 우리 마음대로 ‘격려’란 뜻으로 사용하는 게 옳은 지는 의문이다.
요즘은 K팝이 전 세계로 유행하며 외국의 한류팬들 사이에서 ‘화이팅’이 대표적인 한류 유행어로 유명해져서, 응원 구호로 쓰이기도 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영어의 ‘fighting’과는 관계없이 ‘화이팅’을 한국어로 인정하면 어떨까? 영어 철자로는 ‘hwaiting’ 으로 표기하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