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을 다녀온 이웃을 만났다. 우리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내며 이제는 허물없이 마음을 열고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런 그녀를 만나는 일은 늘 즐겁지만 그녀가 한국을 다녀온 후 만날 때는 조금 다르다. 나이가 더 들고 몸이 힘들어지면 한국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내게 가끔 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내성적인 내가 사람을 곁에 두는 일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이별도 쉽지 않기에 마음이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기는 그녀는 즐겁게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는 표정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그려졌다. 가족들과 오랜 친구를 만나는 일이 타국생활 하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립고 늘 아쉬운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채웠을 때의 행복함은 목마름을 적시는 오아시스 같았을 것이다. 또한 건강에 적신호가 많아지면 한국으로 가겠다는 그녀의 시간이 곧 올 것 같은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멀리 가는 일이 생길 것 같아 심란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그녀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괜한 짐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녀는 이야기했다. 집에 왔을 때 예전과는 다르게 너무 평화롭고 천국 같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가서 살겠다는 마음도 조금 접었다고 말했을 때 ‘재미있는 지옥보다 재미없는 천국이 더 좋죠?’ 하는 말로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고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들었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상황이 바뀐 것은 없는데 내 마음이 왜 더 가벼워졌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타국생활 하면서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며 힘들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누군가는 값진 보석보다 더 소중한 것이다. 그건 예절과 신뢰로 세월의 여과 과정을 거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결코 쉽게 얻어지는 관계는 아니다. 그런 만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집착하는 마음이 숨어 있었나 보다. 사람은 가까이서 오가며 서로의 온기를 느껴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만날 수 있는 거리도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그렇다 보니 떠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나 자신을 성숙하지 못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지구촌을 하나로 만든 통신망 덕분에 언제든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굴도 보며 웃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원하는 대로 일상을 나누고 빠르고 생생하게 전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이 때로는 멀리 떠나간 뒤에 서야 존재감이 더 크게 다가온 사람을 오히려 가까운 인연으로 발전하게도 했다. 멀리 이사한 뒤에 서로를 챙기며 가까워진 친구가 생각났다. 언제든 전화해서 속내를 다 보여도 쑥스럽지 않은 친구, 아주 가끔이지만 먼 거리 달려가고 달려와서 마주 보는 사이가 되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던 말은 이제 옛날말이 된 것 같다.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마음먹기 달렸다는 것이다.
곁에 두고 싶은 욕심나는 사람,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 사람을 원한다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그런 사람인가를 생각하면 자신은 없다. 하지만 알고 있는 만큼 노력하고 진심 어린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한다면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살아가는 좋은 이웃, 좋은 벗이 될 것이다. 떠남에 대한 걱정보다는 함께 하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시간이 흐를수록 실감하고 있다. 많은 것으로부터 집착하는 마음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버려야겠다는 생각 만으로도 한결 가벼운 느낌이다. 함께 나누며 웃을 수 있는 순간에 좀 더 충실하게 사는 게 현명한 삶이라고 내게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