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욕심이 많다. 세월이 지나며 내가 가진 나쁜 버릇들은 고쳐진 것도 있고 또는 잃어버린 것도 많은데 도무지 책에 대한 욕심은 변함이 없다. 내가 가진 책들이 방마다 있는 책장들을 꽉 채우고도 넘쳐나서 바닥에서 벽을 타고 콩줄기가 기어가듯 올라가며 사방으로 번져서 솔직히 한 방은 발 디딜 자리가 없을 정도다.
오랫동안 남편은 책 정리하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몇 권 씩 내보냈지만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이나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은 선뜻 떠나 보내질 못한다. 그리고 서점에 들리면 어김없이 또 읽고 싶은 책을 사가지고 온다. 그렇게 내 보내는 것보다 더 많이 들여오니 집안 곳곳은 책으로 어수선하다. 한때는 eBook의 편리함에 좋았지만 종이책은 영원한 사랑이다. 뉴욕에 살던 선배와 애틀랜타에 사는 선배가 자신들이 아끼던 책을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책장을 비우니 허전함보다 가뿐해서 좋더라 한 말을 나는 흘려 들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한글책도 모았다. 몽고메리에 사는 한인들로부터 구한 동화책은 손주들에게 한국 전래 스토리를 소개할 좋은 매체였다. 내가 잊었던 어릴 적 기억이 책 속에 담겨있어서 여간 흥미롭지 않았다. 큰 딸네와 작은딸네에 박스 가득히 가져가서 손주들에게 읽어주며 하하 호호 했더니 아이들도 아름다운 그림에 푹 빠져서 재밌어 해서 가져간 보람이 있었다.
올해는 더 많은 동화책을 구했다. 여러 출판사의 그림과 내용이 상큼한 책들은 동양과 서양의 흥미로운 스토리라 호기심을 북돋웠다. 처음에는 손주들에게 읽어주려고 구했는데 오히려 내가 더 재미있게 읽었다. 성인책보다 가뿐하고 권선징악, 명확한 진리를 단순하게 정리해서 좋고 더구나 큰 글씨는 돋보기가 필요 없었다. 어느 날 수 백 권의 책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나를 페이스타임으로 본 어린 손주가 “할머니 도서관” 이라며 좋아했다. 책을 좋아하는 4살 손주는 책이 많은 자신의 방을 “나의 도서관” 이라 부른다. 나도 많은 한글 동화책을 가진 할머니 도서관의 창문 가까이 내 의자 옆에 작은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서 여름방학에 아이들이 오면 편하게 책을 읽도록 준비했다. 그곳에서 책을 읽는 아이들의 상상력이 무한정 자랄 것을 바랬다.
앨라배마에서 긴 여름을 보낸 7살 손주는 한글을 떠듬떠듬 읽지만 이해를 못하니 빠르게 흥미를 잃었고 한국의 전래동화는 활동적인 손주의 시선을 오래 끌지 못했다. 그러다 7월말에 작은딸네의 4살 손주가 합세해서 할머니 캠프의 마지막 2주를 함께 보내며 상황이 바뀌었다. 천방지축 뛰노는 사내아이들을 양 쪽에 앉히고 매일 한글 동화책을 번역해서 읽어주면 아이들은 제각기 의견을 쏟아냈다.
그리고 몽고메리 근교 명소를 찾아다니는 길에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에게 교대로 스토리텔링을 시켰다가 꽤 재미난 성과를 얻었다. 큰아이는 수퍼 히어로와 해리 포터, 무술을 엮어서 액션 스토리를 만들었고 작은아이는 자기가 읽은 책들의 이야기를 뒤섞어서 동서양을 버무린, 멋지고 기발난 착상의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의 상상력에는 필터링이 없었다. 아이들은 환상과 실제를 알면서도 마술은 가능하다고 믿었다.
사실 아이들이 시각영상에 익숙해서 창작력을 잃을까 두려웠는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융통성이 있었다. 아이들 내면에 천진난만한 아이가 공존하고 있음을 보고 나도 순수한 마음으로 뚱딴지 같은 스토리를 함께 즐겼다. 먼 곳에서 전화한 딸이 아이가 스토리를 푸는 것을 챕터 6까지 듣다가 다음에 계속해 달라고 부탁하니 아이는 자기의 스토리는 챕터 20에 끝난다며 능청을 떨었다.
아이들은 어떤 주제에나 겁 없이 덤볐고 삶과 죽음을 가볍게 당연시했다. 가끔 버드나무 줄기같이 유연하지만 나이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서 뭐든 따지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팽팽하게 버티면 내가 손을 들었다. 하늘의 구름을 보고 환상적인 가상 인물의 스토리를 만들고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에 시를 읊듯 한술 더 뜨는 바람에 나를 화들짝 놀라게도 했다. 이렇게 맹랑한 아이들의 세계에 푹 빠져서 한여름의 더위를 잊었다.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도 동심에는 간단하고 삶이 단순한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은 아이들과의 여름방학에 거둔 나의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