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대선 이후 국경 정책이 엄격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대선 전에 미국 국경을 넘으려는 중국인이 몰리고 있다. 이에 주요 밀입국 통로가 되고 있는 파나마와 코스타리카 당국은 밀입국 브로커를 체포하는 등 단속 강화에 나섰다.
AP·AFP통신에 따르면 파나마 국경수비청과 검찰은 7일 “다리엔 갭 인근 산타페에서 아시아 출신 이주민의 밀입국을 돕는 불법 행위를 한 범죄 조직을 해체했다”고 밝혔다. 다리엔 갭은 이주민들이 육로로 북미로 들어갈 때 거치는 열대우림이다.
2023년 10월 중국인들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망명 신청 처리를 기다리는 동안, 자원봉사자로부터 오트밀 한 그릇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파나마 당국은 브로커 15명을 체포하고 차량 11대와 휴대전화·소총·현금을 압수했다고 밝혔다. 이 조직은 다리엔 갭을 거쳐 파나마로 들어온 이민자들을 코스타리카 혹은 니카라과 국경까지 데려갔다. 이민자 국적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코스타리카에서도 브로커 21명이 붙잡혔다. 코스타리카 이민청은 AP에 “18차례 압수 수색을 통해 이주민 101명의 신병을 확보했다”며 “중국·시리아 등 (이주민) 국적은 다양하다”고 전했다.
다리엔 갭은 급류와 야생동물 등으로 통행이 힘들 뿐 아니라, 갱단이 강도·강간, 살해 위협을 벌이는 곳으로 악명 높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중국 정부의 감시, 경제난을 피해 미국행에 나선 중국인들이 늘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중국에선 이같은 불법 이민을 ‘룬(潤)’이라고 한다. ‘도망친다’는 뜻의 영어 단어(run)’을 한자로 표기한 말이다. 지난해 다리엔 갭을 통과한 난민만 50만명이었다. 올해는 현재까지 22만명 이상이 통과했다.
코스타리카 당국에 따르면 미국 국경까지 데려가는 조건으로 한 명당 1만4000달러를 요구한 브로커도 있었다. 일반 루트는 1인당 500달러면 되지만, ‘VIP 루트’는 2600~8000달러를 내야 한다. VIP 루트로 국경을 넘은 사람이 현재까지 700명 이상이라고 AFP통신이 전했다.
국경 순찰대 요원이 2023년 4월 10일 텍사스주 프론튼에서 멕시코에서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미국으로 들어온 중국인 이주 남성을 수색하고 있다. 로이터
원래 미국에 밀입국하려던 중국인들은 남미의 에콰도르에 간 뒤 멕시코와 미국 국경으로 가곤 했다. 에콰도르가 중국인들이 무비자로 90일간 체류할 수 있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콰도르가 최근 중국과 무비자 체류 협정 효력을 중단하면서 중국인들이 ‘우회 루트 찾기’에 바빠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전했다.
에콰도르 대신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볼리비아가 차선책으로 꼽혔다. 그러나 볼리비아 정부도 중국인 입국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고 있다. 수도 라파스에서 중국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한 중개인은 WSJ에 “최근 이집트·튀르키예에서 볼리비아행 비행기를 탄 중국인 고객 10명이 입국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무비자로 입국해도 볼리비아를 택하면 미국 국경까지 가는 길은 거리상 에콰도르보다는 더 멀어진다. AFP에 따르면 일부 중국인들은 수리남에서 가이아나와 베네수엘라를 거쳐 가거나, 쿠바에서 소형 선박을 타고 미국으로 가는 바닷길을 택한다.
이번 미 대선에서 이민 문제가 중요 이슈로 부각되면서 국경 정책이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 6월 로이터·입소스 조사에 따르면 경합주 유권자들은 이민 문제(32%)를 물가(52%) 다음가는 중요 대선 이슈로 여기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반(反)이민 정책을 다시 시행하면 이민 루트가 막힐 수 있다는 두려움에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이 몰린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공화당은 트럼프표 대선 공약인 ‘국경 장벽’을 완성하고 현재 해외에 주둔 중인 미군 수천 명을 남부 국경으로 배치하는 등 국경 보안을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는 발언으로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지난달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행정부 때 백악관 고문을 지낸 피터 나바로는 “국경을 넘는 이주민들은 살인자, 테러리스트, 중국 스파이”라고 언급했다.
상대적으로 이민에 우호적인 민주당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 노동자 중 불법 이민자가 약 750만명에 달하는 상황이 되자, 민주당 내부에서도 불법 이민 규제 강화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조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텍사스에서 전세기를 동원해 중국인 불법 이민희망자 116명을 중국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앞서 지난 6월 바이든 대통령은 남부 국경을 통해 들어온 불법 입국자에 대한 망명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한국 중앙일보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