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여행 3 – Navajo Nation and Page
인디언 보호구역안에 있는 숙소, Shash Dine EcoRetreat은 넓은 고원에 북미 원주민의 원뿔형 천막을 연상시키는 하얀 천막 Bell Tent 3개와 Sheep Wagon 둘, 그리고 독특한 구조물 몇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다. 흙먼지로 부석한 들판에 화장실과 세면 시설은 숙소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어서 전화기를 충전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곳은 전기가 없고 밤에는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을 가야 하는 곳이라 덕분에 디지털 디톡스 했다.
남편과 사위는 텐트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서 넓은 고원의 여유를 즐겼지만 나는 딸과 손주와 함께 트레일을 걸었다. 하늘과 땅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룬 야생 트레일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능선아래로 길게 이어진 암석층의 웅장함은 그랜드 캐년을 연상시켰다. 더위가 한풀 꺾이며 석양이 깃들자 어둡기 전에 양치 치려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 여행중에 저녁마다 먼저 첫 별을 보려고 손주와 다투었는데 제일 먼저 첫 별을 봐서 신나게 달리며 흙먼지를 흩던 손주에게 “Run with the Wind” 애칭을 붙여줬다.
어둠이 고원을 삼키자 찾아온 별들을 보다가 잠들었다. 잠이 깬 것은 새벽 2시였다. 웨곤에서 나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완전 칠흑, 사방이 고요했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놀랐다. 세도나에서 그렇게 보고 싶었던 총총한 별들과 은하수가 넓은 하늘을 덮은 신비한 세상이 사방으로 열려 있었다. 고개를 젖히고 어지럽도록 웨곤을 도니 반 고흐가 내 앞에 펼쳐진 밤하늘을 봤다면 그의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은 열정으로 타오르는 붉은 색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주와 함께 보고 싶어서 딸네가 자는 텐트로 갔지만 깨우지 않았다. 멀리서 개 짓는 소리가 허공에 흩어졌고 내가 소란을 피웠는지 잠이 깬 남편이 내다봤다. 밤하늘의 별은 당연하다며 남편은 춥다고 침대속으로 들어갔고 밤의 신비에 유일한 목격자 였던 나는 흥분했다. ‘별이 빛나는 밤’ 이 ‘달이 빛나는 밤’ 보다 좋았고 살아있음에 기뻤다.
푸근한 여명에 이어 지평선 멀리서 떠오른 태양은 고원을 달려온 말을 탄 원주민 전사들의 환영을 보여줬다. 고원의 일출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카우보이 커피와 나바호 티를 마시며 신선한 과일로 야외에서 아침을 먹다 만난 이탈리아, 프랑스 등 해외에서 온 투숙객들과 재밌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은 미국의 거친 야생미에 매혹되어 있었다.
나바호족의 환경을 체험한 숙소를 떠나서 호스슈 벤드(Horseshoe Bend)로 가니 관광객들로 붐볐다. 더위와 씨름하며 긴 대열에 섞여 걸어가는 길에 스페인에서 순례길을 걷다가 본 석탑, 편편한 돌 위에 작은 돌들을 차곡차곡 올려놓은 것들이 눈길을 끌었다. 작은 돌덩이에 근심과 고통을 담아서 돌탑위에 얹고 지나갔던 날을 회상하니 내 발 걸음이 무거웠다. 콜로라도 강을 끼고 형성된 말발굽을 닮은 놀라운 천연의 작품이 절벽아래 계곡에 있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소도시 페이지로 가서 앤텔로프 캐년(Antelope Canyon) 투어 시간을 기다렸다. 1970년에 형성된 페이지는 인구 7400명 정도지만 주변에 명승지가 많아 100도가 넘는 기온이라도 방문객으로 붐볐다.
잡지나 포스트카드를 화려하게 장식한 앤텔로프 캐년 사진이 환상적이어서 기대감이 컸다. 예약한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점심을 먹고 타운 관광에 나선 남자들과 헤어진 딸과 나는 전망대로 가서 댐을 구경하고 아기자기한 거리를 다니다 재미난 것을 봤다. 도시의 중앙도로에 온갖 종파의 10 교회가 나란히 이웃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천주교, 감리교, 장로교, 침례교 등 줄줄이 이어진 교회길의 일요일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제각기 종파로 흩어진 교인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하느님은 무슨 기도를 받으실까? 추측은 흥미로웠다.
앤텔로프 캐년은 포장도로를 벗어나 울퉁불퉁 붉은 흙 길로 한참을 들어갔다. 입구부터 햇볕에 들어난 암석층의 색깔과 모양에 끌렸다. 천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캐년의 구간은 짧았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로 암석층의 구비구비 휜 모습은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천사의 날개이거나 춤추는 댄서, 워싱턴 대통령의 모습 등 빛의 향연이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펴게 했다. 관광버스가 페이지로 돌아오자 우리는 바로 89번 국도로 유타주의 자이언 국립공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