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 프랑스 혁명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단두대로 보내면서 자신은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더욱이 로베스피에르는 ‘청렴지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확신이 강했던 그는 다른 사람들의 과오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다. 50만 명이 체포됐고, 단두대 처형, 혁명파와 왕당파간의 충돌, 농민폭동 등으로 17만 명이 희생됐다. 그러나 1년여의 공포정치 끝에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피에 굶주린 로베스피에르의 등장은 프랑스혁명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다.
1769년 10월 주교의 추천으로 로베스피에르는 파리의 르 그랑 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철학과 역사학, 윤리, 법률 등을 공부했으며 성적은 좋았다. 이 시기 그는 장 자크 루소를 접한다. 정확히는 빠져든다. 로베스피에르는 술과 담배를 멀리했고, 음주·흡연 학생들을 경멸했다. 졸업한 후에도 그는 음주·흡연 동창들을 만나면 인사도 하지 않고 외면했다.
루이 16세는 대관식 직후 르 그랑 학교를 방문한다. 어린 왕비를 동반한 최초의 파리 여행이었다. 당시 열일곱이던 로베스피에르는 학생 대표로 선출되어 라틴어로 된 환영사를 읽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다. 연설 당일 로베스피에르와 군중은 빗속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다. 로베스피에르는 진흙탕에 무릎을 꿇고 환영사를 했다. 그런데 왕은 로베스피에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기념식 직후 바로 학교를 떠났고 축사에 답례도, 국왕 내외를 기다리느라 오랫동안 기다렸던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한마디 인사도 남기지 않았다. 아침부터 학교 청소를 하며 준비했던 학생들은 분개했다.
후에 루이 16세의 처형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에서 로베스피에르는 11회의 연설 모두 사형을 요구했다. 그는 부르주아 층과 중소 지식인들에게 경고하는 차원에서라도 국왕과 그의 사치스러운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는 처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독 국왕에게만 가혹하다는 비판에도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는 단두대에 섰다. 로베스피에르는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았다. 단두대 앞에서 루이 16세는 담담하고 당당했다. 최후 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죽음에 대해 죄 있는 자를 용서하노라. 진정으로 말하건대 이 피는 프랑스로서는 흘릴 이유가 없는 피다.”
로베스피에르는 1793년 1월 21일 집정관이 되었다. 그는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육체가 깃든다며 범죄와 약탈, 도적질을 엄하게 다스렸다. 그는 무기를 소지하고 약탈, 강간을 한 자와 뇌물을 수수한 부패 관료는 무조건 교수형에 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범죄자뿐만이 아니었다. 국민공회에서 지롱드파를 추방하고 최고 권력을 장악한 로베스피에르는 공안위원회, 보안위원회, 혁명재판소 등의 기관을 이용, 공포 정치를 단행하면서 반대파를 모조리 단두대로 보냈다.
그러나 그의 최후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실각한 후 그는 스스로 자신의 턱에 권총을 쏴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중상으로 끝나고 콩시에르주리 감옥에 수감된다. 1794년 7월 28일 로베스피에르는 콩코르드 광장에서 단두대에 올라 목이 잘린다. 그의 정적들의 목이 떨어져 나간 그 장소, 그 칼날이었다. 그가 폭정의 주역으로 체포되어 단두대 위에 서던 날, 그가 그토록 ‘위한다’고 부르짖었던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일반시민들은 더 이상 그에게 동정을 보내지 않았다. 이들에 있어서 그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배신자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문재인은 운명이다〉는 변호사 문재인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까지 이끈 출발점이 된 책이다. ‘운명’은 정치인 문재인의 삶을 붙잡는 키워드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썼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그의 말대로 그는 이제 꼼짝 못하는 처지가 됐다.
문재인은 온화한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재임 시절 공개적으로 격노한 적이 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해서였다. 2017년 가을부터 검찰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군 댓글 공작, 다스 의혹 등 여러 갈래로 MB의 목덜미를 조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검찰의 칼끝이 이제는 그를 겨누고 있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운명을 설명할 때 가장 적절한 속담이 아닌가 싶다. 결과는 내가 한 행동의 응답이다. 운명은 정직하다.
칼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글에서 “역사는 반복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소극(笑劇)으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마르크스는 제1공화정을 파괴한 비극적인 사건인 나폴레옹 1세의 쿠데타와 그것을 흉내 낸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를 두고 그렇게 비극과 소극으로 비유했다. 마르크스의 이 표현은 한번 비극을 겪고도 제대로 반성을 하지 않거나 교훈을 얻지 못하면 다음번에 비슷한 사건이 우스꽝스런 형태로 재연된다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수사받는 자와 수사하는 자의 자리가 뒤바뀌는’ 기막힌 소극을 보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일으킨 피바람은 이제 본인까지 집어삼킬 기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옭아맸던 ‘경제공동체’가 지금 문재인을 겨냥하는 건 씁쓸한 아이러니다. 문재인은 박 전대통령의 심정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을까. 국가지도자인 전직 대통령이 비리와 불법 혐의를 받으며 체모(體貌)가 손상되는 걸 보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