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년 여름 예루살렘에서 대규모 반란이 일어났다. 로마 총독이 유대인들을 십자가형 으로 죽이고, 체납된 속주세를 받으려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17달란트의 금화를 몰수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몰수 금액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신성한 성전을 더럽힌 행위에 분노하여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갈릴리 전 지역을 손에 넣었다. 서기 70년 티투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하여 함락하고 성전도 파괴했다. 이 전쟁으로 유대인 110만명이 죽고, 9만 7000여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당시 성전의 제단 주위는 사람의 피가 강을 이뤄 목까지 차올라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예루살렘 점령으로 전쟁은 일단락되었으나 유대인의 반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엘리에젤 벤 야 이끄는 967명의 열심당원들은 로마군에 쫓겨 마사다 요새로 들어가 2년 동안 최후까지 로마군에 저항하여 싸웠다. 마사다는 유대 사막 동쪽 광야에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 위에 자리잡은 천혜의 요새다. 마사다를 포위한 로마군은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며 활을 쏘아대는 반란군을 쉽게 이길 수 없었다. 마사다의 서쪽 절벽에는 넓은 바위가 툭 튀어나와 있다. 실바는 이곳에 토산을 쌓아 올리도록 지시했다. 토산과 비탈길이 완성되자 로마군은 본격적으로 공성병기를 동원해 공격을 시작했다. 지형적 우세를 상실한 이상 유대인들은 오래 버틸 방법이 없었다. 엘리에젤 벤 야이르는 전사들을 불러모았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오래전부터 굳게 맹세했소. 결코 로마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고! 이제 그 맹세를 실천에 옮길 때가 다가왔소. 내일이면 적들은 요새 안으로 몰려올 것이오. 적들은 우리를 살려주겠다고 하지만 우리 앞에서 성경을 찢고 조롱할 겁니다. 적의 손에서 우리의 아내와 아이들을 구합시다. 먼저 처자식을 죽이고 우리도 따라 죽읍시다. 노예가 되기보다는 자유라는 이름의 수의(壽衣)를 입읍시다.”
남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포옹한 뒤 칼을 들었다. 아내와 자식을 죽인 뒤 회의장에서 다시 모인 그들은 제비를 뽑았다. 뽑힌 사람 10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 손으로 죽인 처자식 옆에 누웠다. 제비를 뽑은 10명은 요새 안을 돌며 전우의 목숨을 거뒀다. 남은 10명은 또 제비를 뽑아 똑같은 방식의 죽음을 택했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은 스스로를 찔렀다.
가까스로 요새를 점령한 로마군은 눈앞에 전개된 처참한 광경에 경악했다. 결사적으로 싸우던 전사들은 간 데 없고 어린아이와 여자를 포함해 960구의 시신만 남아 있었다. 생존자는 달랑 7명. 피신했던 여자 2명과 아이 5명만 살아남았다. 유대인은 마사다가 함락당한 뒤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온갖 박해와 천대를 받는 디아스포라 신세가 됐고, 2차대전 때는 나치 독일에 의해 600만명이 희생됐다. 마사다는 이스라엘인의 자존심이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전쟁에서 패배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뜻대로 우리의 영혼까지 뺏어가지 못한 로마에 승리했다.” 이스라엘군 신병 훈련소를 비롯해 각종 군사학교의 마지막 훈련 코스가 바로 이곳이다. 이스라엘군의 젊은 장병들은 마사다 정상에서 이렇게 외친다.
“조상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잊지 마라! 마사다를 기억하라!”
이스라엘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 이스라엘은 최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지도자들을 잇달아 제거함으로써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혀온 헤즈볼라 지도부를 괴멸시켰다. 미국도 못 말리는 그들의 ‘깡다구’와 독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에게는 ‘강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절박감이 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한번 지면 끝난다. 큰 나라는 한번 져도 재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이스라엘은 한번 지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패배는 없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여자도 의무징용대상이다. 이스라엘군에는 전투에서 ‘돌격 앞으로!’는 없고 오직 지휘관의 ‘나를 따르라!’만 있을뿐이다. 그래서 전투에서 장교의 사망률이 높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정치인들 중에는 특공대 출신들이 많다. 네타냐후 총리도 특공대 장교 출신이다. 그의 형 요나단 네타나후는 1976년 우간다 엔테베에서 인질 구출 작전을 지휘하다가 전사했다.
이와 대조되는 이상한(?) 나라가 있다. 레바논이다. 옆 나라가 공격하는데 정부의 모습이 안 보인다. 그 흔한 ‘보복 천명’ 성명서 하나 안 낸다. 이유는 간단하다. 레바논 정부가 마비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1940년대까지 프랑스 식민지였던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 신자가 섞여 살아 독립 후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잦은 내전으로 나라가 거덜나자 국제사회의 중재로 독특한 정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른바 ‘종파간 삼권분립’이다. 통상적인 입법·사법·행정부가 아니라 기독교, 이슬람 수니파, 이슬람 시아파가 대통령과 총리, 국회의장을 나눠 맡고 있다. 국회 의석 또한 세 종파가 미리 정해진 비율로 나눠 갖는다. ‘트로이카’라 불리는 세 지도자에겐 모두 거부권이 있다. 유혈 분쟁 하지 말고, 행정부·입법부의 권력을 공평하게 배분하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협치는커녕 각 종파가 ‘각자도생’에만 열중하고 있다.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지만, 국제기구가 권고해온 금융실명제와 같은 공직자의 부정축재를 막는 제도는 의회 정부 모두 묵살한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시스템이 고장난 레바논을 숙주 삼아 성장했다. 이들을 소탕한다며 이스라엘이 쏟아붓는 폭탄을 보면서, 레바논 국민은 도움을 청할 곳도 모른 채 길바닥에 나앉아 있다. 정쟁으로 해가 뜨고 정쟁으로 해가 지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게 정상적인 국가인가? 또 한 번 망해봐야 정신 차릴 건가? 정치가 망가진 레바논의 비극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