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백발의 노인이 나를 보며 서툰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아—네 안녕 하세요!” 어색한 말투지만 친절한 그분의 마음이 느껴져 반갑게 나 역시 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그렇게 코스코에서 장을 보던 나는 갑작스럽게 미국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 본인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중이고 나를 보고 반가워 배운 것을 사용해 보는 것이라고 하신다. 퇴직을 하고 보니 그동안 못 해본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재미가 있어 좋다고도 하시면서 짧은 한국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이어 가셨다. “당신도 영어를 배우고 싶으면 다운타운에 있는 Baptist Church 로 오라.”고 하신다. 부인이 그곳에서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셨다.
12년전 몽고메리로 이사 온 나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며 알려준 곳이 그곳이었다. 처음 영어를 배우기 위해 그곳에 갔을 때 나는 영어를 가르쳐 주시는 분들을 보며 매우 놀라기도 하고 미국 사람들은 정말 사회안에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봉사하시는 분들은 모두 지긋이 나이가 드신 분들이셨다. 아마도 평생을 세상에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며 벌이를 하셨을 것이고 최선을 다해 일을 하신 분들이실 것이다. 현역에서 일을 마치고 이제는 편히 여가생활을 하며 즐길 법도 한데 많은 어르신들은 밝고 반가운 얼굴로 영어가 서툰 우리들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신 것이다.
그분들의 표정과 말투는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했다. 서로 다른 문화의 어색함은 문제되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정말이지 다국적 이민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대표적인 나라이다. 작은 클래스 안에서도 몇 나라의 사람이 있었다. 그 많은 이들을 어르신들께서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이방인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다.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머리는 하얗고 등도 약간 굽은 어르신들이 정성을 다해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을 돕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그동안의 나의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아파서 병원을 다니는 동안에도 보았다. 병원 안에도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양한 곳에서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주고 계셨다. 그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나도 앞으로는 간단한 것이라도 도움을 주며 사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고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지역 사회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봉사활동이 있었다. 퀼트 이불을 만들어 병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일을 소개받고 함께 일을 해 보는 시간을 가졌을 때도 이미 그곳에는 어르신들이 묵묵히 봉사를 하고 계셨다.
아무리 사회가 개인화가 되어가고 있다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서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가난과 질병, 어려운 현실에 부딪혀 어두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이다. 사회는 이렇듯 여러 부류의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누군가는 한없이 부족하고 누군가는 차고 넘치는 생활로 빛과 어둠처럼 공존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낄 때마다 여러 곳에서 밝게 웃으며 도움을 주던 어르신들의 표정을 떠올린다. 봉사활동이라는 것은 사랑 없이는 그야말로 힘들고 고된 일이 될 것이다.
신앙을 갖게 되면서 공동체의 삶을 더 깊이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삶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만으로 가득했었고 이웃의 어려움은 그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의 삶이었다. 나보다 이웃을 살피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혼자가 편하고 혼자서도 제 몫을 잘 해 나갈 테니 굳이 번거롭고 불편한 공동체 적인 생활을 찾아 할 필요 없다 여겨지는 세상이다. 그런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는 나였고 지금도 가끔은 공동체안에서 경험하는 불편한 사람이나 일을 대하게 되면 혼자가 편하다고 쉽게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점점 개인이 중시되는 지금은 나만 만족되어지는 행복을 찾기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행복을 그 어느때 보다도 더 열심히 찾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너와 내가 만나 더불어 만드는 행복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