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이 있는 11월을 ‘감사의 달’로 정했다. 그리고 이달 초부터 일상에서 감사한 일들을 크게 말한다. 그러면 남편은 버릇처럼 “어제 저녁으로 무엇을 먹었지?” 묻고 나는 “그 음식 맛 기억해요?” 되묻는다. 남편은 내가 감사하다고 열거한 소소한 일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나는 남편과 끝말 잇기 놀이하며 잠시 동심이 된다.
우리 부부는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하며 준비한 덕분에 안정된 노후생활을 하니 의식주에 불편 없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이민자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니 정서적으로 토박이 비슷해서 생활에 별로 어려움도 없다. 딸들은 직장과 가정을 가진 어른들이고 어린 손주들, 재롱덩이로 우리 부부에게 빛과 웃음을 준다. 더구나 미래의 지도처럼 남편이 앞장서서 사니 간혹 바늘에 찔린 듯 아찔하지만 역시 나에게 적응하고 준비할 기회가 있어서 감사하다.
나이와 함께 온 신체의 변화는 적당히 적응하며 살고, 정신적인 변화도 한쪽 눈 질끈 감고 사귀며 산다. 우리는 각자 처방 받은 약들 열심히 먹으면서 운동 열심히 하고 여기저기 맛집 다니며 입맛대로 골라 먹는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고 싶다는 남편의 신조대로 건강식 같은 것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러 동네 식당에 가서 더러 낯익은 얼굴들을 보면 편안한 안정감을 느끼는 것 또한 감사하다.
간혹 잊어버리는 일들이 생기면 당혹스럽지만 그것 또한 중요하지 않다고 묵살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면 속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을 꾹 누르고, 한발짝 물러나서 마치 제 3자인양 사태를 분석하자고 나를 훈련시킨다. 그러면 충격도 가볍고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여럿 떠오른다. 주위 사람들의 감정적인 압박도 저지할 수 있고 나날이 거칠어지는 남편의 무례도 가볍게 대응한다. 남편의 공격을 받는 타인들에게 “당신은 늙지 마세요.” 라고 솔직한 위로를 준다. 나도 늙는 것을 잊으니 감사하다.
지인들과의 끈적한 교류, 매주 만나는 글동무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 새롭게 만난 사람과의 사귐들이 씨줄 날줄로 나의 삶에 엮어진다. 가끔 몽고메리를 찾아오는 국제정세 전문가들의 강연을 찾아가 들으면서 세상사의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은 내 의식의 바닥에 사람은 한 나라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 지구 곳곳의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에서다. 그리고 정치 성향이 전혀 다른 남편과 나를 분리시켜 내 일상에 평안을 지키는 방법도 가졌다. 음악과 드라마가 있는 오페라를 즐기고, 좋은 책 읽고, 인간애가 물씬한 부드러운 드라마나 자연환경의 다큐를 본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일상에 만족하니 감사하다.
그러다 이번 주말에 연극장에서 ‘크리스마스 캐롤’ 공연을 기다리면서 극장 안을 휘 둘러보니 거의가 다 낯선 사람들이었다. 30년이 넘도록 늘 같은 자리에 앉아서 300 작품이 넘는 개막공연을 보면서 인사한 앞뒤 옆자리의 낯익은 지인들이 안 보였다. 슬금슬금 사라진 지인들의 더러는 세상을 떠났고 더러는 타 지역에 사는 자손들 곁으로 이사 갔다. 또 많은 사람들은 노안과 난청으로 연극장을 떠났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고정석에 앉아 공연을 즐기니 감사했다.
남부 수다꾼인 남편은 옆자리에 앉은 여인과 금방 친숙해졌다. 사바나에서 온 교사인 여인이 친구가 무대에 서기 때문에 응원 차 와서 몽고메리 관광한다고 하자 여러번 사바나를 들린 남편은 사바나의 명소들을 그리워했고 두 사람은 오랜 지인인양 별별 이야기 다 나눴다. 그 옆에서 내 시선은 극장 바닥에 새로 깔린 카펫의 무늬를 따라갔다. 멋진 작품보다 더 멋졌던 지인들의 부재에 마음이 허전했다. 하지만 과거는 어제,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지금은 이렇게 내 자리에 앉아서 무대위의 스토리에 몰입하며 감사하자고 우리도 떠날 때가 다가온다는 불안감을 밀쳐냈다.
11월의 막바지에서 막상 내 생활의 모든 일이 감사함으로 가득해서 기쁘다. 청명한 하늘이나 흐린 하늘, 말라 뜰에 뒹구는 낙엽, 부지런히 드나드는 병원이나 약국에서, 심지어 남편의 허무맹랑한 투정을 상대하면서 나는 내 하루가 어제와 같은 것에 감사하니 자잘한 일들이 야생화로 나를 둘러싼다. 향기롭다. 그리고 내 일상은 내가 노인임을, 11월달만 아니라 일년 12달 모두 감사한 달임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