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치마처럼 각 잡힌 잔주름으로 모양을 낸 유리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것은 꽤 크고 묵직했다. 접시에는 하얀 거품을 낸 세제가 묻어 있어서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힘을 주어 잡았다. 수돗물이 흐르고 있었고 손은 빠르게 접시의 거품을 걷어내고 싶어했다. “앗!” 검지 손가락에서 베인 느낌이 들었다. 접시 둘레 어딘가 깨진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접시의 가장자리를 더듬어 보았지만 불편하게 느껴지는 곳은 없었다. 남은 설거지를 마치고 손에서 물을 거두자 손가락 마디 접힌 곳에 빠알간 액체가 올라왔다. 유리 접시의 각진 모서리가 살을 스치고 지나갔나 보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한국에 계신 어머니한테서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옆에 있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통화를 이어갔다. 나에게 바꿔줄 전화는 아닌 것 같았다. 남편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나니 뒤뜰에 있는 식물들이 보였다.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그것들을 실내로 들여놓을 좋은 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뒤뜰에 나서자 바람의 흐름에 따라 나뭇잎끼리 부대끼는 소리만 들렸다.
화분 안에 눈에 띄지 않는 벌레가 살고 있을 지 몰라 유기농 해충제인 님오일을 식물 주변에 뿌려두었다. 벌레에게 다른 곳으로 이사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물에 씻어 놓은 빈 화분이 햇빛에 마를 시간도 필요했다. 내게도 잠시 쉴 틈이 생긴 걸 어떻게 알았는지 마침 남편이 나를 불렀다. 그를 바라보자 집안으로 들어와 보란다. 보기 드문 남편의 특별한 요구였다. 남편은 나의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보라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한테서 엄마에게 위암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해주었다. 엄마는 멀리 사는 나에게 굳이 걱정스러운 소식을 전하고 싶지 않았고, 평소에 자주 통화하는 어머니한테만 알리셨다고 남편은 설명했다.
마음을 차분하게 정돈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낭랑했다. “엄마, 아프다며?” 에둘러 말하고 싶지 않았다. “너네 어머니한테 들었구나? 하나도 안 아파.” 엄마는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다가 지난 5년간은 건너뛰었는데 그 기간에 암이 생겼나 보다고 추측했다. 지금은 전혀 아프지 않고 수술할 병원도 정했다고 알려주었다. 엄마는 무엇보다 아무 걱정 말라고 말한 집도의의 소견을 강조했다.
아픈 사람은 엄마인데, 내 입안이 쓴맛으로 가득 차더니 속까지 메스꺼웠다. 가족 중에 누가 아프거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런 증상이 나타나곤 했다. 며칠 전부터는 접시에 손이 베이고,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일상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더니 엄마에게 수술 전 심장 검사가 필요하고 수술이 한 달 넘게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게다가 한국의 12.3 내란 뉴스까지. 먼 타국에 사는 나는 오랜만에 밤잠을 설치며 한국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리길 간절히 바랐다.
엄마 생각을 많이 하다가 어릴 적, 인천 변두리에서 살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 집 근처엔 소나무가 빽빽한 야트막한 동산들이 있었다. 비가 흠뻑 내린 다음날, 엄마는 버섯을 따러 가자고 했다. 동산들 중에는 어느 대기업이 소유한 산도 있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버섯을 엄청 찾아냈다. 우리는 신이 나서 숲 속을 헤매며 버섯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갑자기 정전이 된 것처럼 주변이 어두워졌다. 곧이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나무들이 빗줄기를 조금 가려주긴 했지만 옷이 순식간에 젖어버렸다. 우리는 오던 길로 몸을 돌이켰다. 하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걸음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비를 맞았다. 그러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낯선 상황이었지만 나는 엄마가 있어서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엄마는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다. 잠시 후, “여기가 길이네”하며 엄마가 웃었다. 엄마가 무릎 꿇었던 자리가 바로 길 위였다. 그제야 내 눈에도 길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 이야기가 떠오른 이유는 엄마가 신을 신뢰하고 긍정적인 소망을 놓지 않기 때문이다. 그 소망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한 걸음을 내딛게 하고 결국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하는 힘이 있다. 이번에도 엄마의 암이 깨끗이 제거되어 여생이 평안하고 함박웃음이 가득하길 기대한다. 더불어 나의 모국, 한국에도 평화가 속히 이루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