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네들은 추수감사절에는 친정식구와 함께 보내고 크리스마스는 시가 식구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우리 집안의 관습이다. 지난달 추수감사절에 버지니아주에 사는 큰 딸네에 모두 모였을 적에 작은 딸이 크리스마스에 영국 시가에 갈 수 없으니 몽고메리에 가도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주저없이 오케이 답했다.
아이들을 다시 본다는 기쁨은 있지만 1살과 4살 번잡스런 사내아이들과 큰 개까지 맞기 위해 집안정리를 하는 것에 조금 스트레스 받았다. 딸네가 오기 이틀 전부터 남편은 평소에 펼쳐놓고 사는 서류들과 신문, 쌓인 메일 등을 박스에 넣어 그의 방에 숨기고 나는 내가 흩어놓고 사는 책들과 craft 재료들에 CD player나 작은 램프들을 모두 내 방에 피난 시켰다. 그리고 두 방문을 닫았다.
화학제품이나 날카로운 것들은 이리저리 옮기고 치우고 빠르게 정리하다가 1월초에 관리하기 버겁던 큰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장식품을 다 떼어낸 후 우리집에서 떠나 보낸 것이 생각나서 아차 했다. 다운사이징 하면서 어린 손주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서둘러 3피트의 작은 생 전나무를 구해 두었다. 막상 도착한 4살 손주에게 “이것은 너의 트리이니 네가 알아서 장식해 봐” 하고 장식품들 중에서 부셔지지 않을 것들을 골라 둔 박스를 줬다.
아이는 신이 나서 나무 가지에 장식품을 달았고 1살 꼬마는 형을 따라 다니며 장식을 잡아 당겨서 한동안 두 아이는 실랑이를 벌렸다. 둘러앉은 어른들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크리스마스 트리가 밝은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즐겼다. 마지막 터치로 아이는 나무 아래에 물을 부어줬다. 아름답게 장식된 자기 나무에 대한 자부심이 얼굴에 환하게 번진 순간 나는 사진 찍었다. 훗날 아이가 이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도록 돕고 싶었다.
사실 우리집에는 일년 사철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하나 있다. 지역 상공회에 근무할 적에 기금 모금을 위한 크리스마스 트리 Silent Auction에 참여했다. 자원봉사자들이 제각기 모티브로 장식한 수십개의 3 피터 크기의 테이블탑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전시된 것들 중에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튀지 않고 은은한 고전적인 분위기에 반해서 남보다 조금 높은 금액을 적어 넣은 덕분에 그 트리는 내 것이 됐다. 집에 가져와 다이닝룸 한쪽 코너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시도때도 없이 기분 내키면 트리의 불을 밝힌다. 한밤에 잠들지 못하거나 새벽 3시에 깨어나서 트리의 불을 밝히면 세상이 아름답게 바뀌고 마음도 평온을 찾아서 좋다.
더구나 내 트리를 장식한 남부 토박이 여인은 대대로 이곳에 살아서 일가친척이 커쥬처럼 퍼져있는 대가족의 어른으로 내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였다. 몸 사리지 않고 평생을 지역사회에 봉사활동 열심히 하던 그녀와 나는 친하게 사귀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통해서 나는 그녀가 꽃장식에 전문가라는 것도 알게 됐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스스럼없이 나서던 그녀가 존경스러웠다. 그녀는 기독교인의 좋은 본보기였다. 한가지 우스운 기억은, 그녀의 집은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야 하는 언덕 위의 하얀 집이었다. 그녀는 두려움없이 그 가파른 길을 운전해서 집 앞에 차를 세웠지만 경사길 오르내기기 싫어하는 나는 늘 언덕 아래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올라갔다. 그런 내 서툰 운전 기술이 한동안 우리들의 농지거리가 됐었다.
내가 상공회를 그만둔 후로 그녀와 연락을 자주 못하던 어느 날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전해 듣고 가슴이 내려 앉았었다. 살며 모두를 사랑하던 그녀를 알게 된 후로 내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된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녀가 장식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적마다 나는 그녀의 밝고 편안하던 얼굴을 떠올리니 트리를 치울 수가 없다.
해마다 7피트 높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리빙룸 한쪽에 세우고 여행 다니며 수집한 여러 지역의 독특한 장식으로 치렁치렁 추억의 세계지도를 그리던 것을 올해부터 그만 둔 것은 순전히 변하는 몸과 마음 탓이다. 기쁘게 장식하던 크리스마스 트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집안일로 변하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어린 손주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새롭게 시작되었으니 나는 손주에게 바통을 넘겼다. 앞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 아이들의 트리를 통해서 사랑을 나누는데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