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경기 열린 곳 인근
가장 최근에 생긴 주립공원
숲 깊고 물 좋아 걷기 제격
호숫가 소풍 즐기기도 좋아
#. 걷기 좋은 곳은 역시 공원이다. 가장 편한 곳은 밥처럼 익숙한 동네 공원이다. 가끔은 별식도 먹어야 한다. 굳이 시간 품을 팔아 유명 공원을 찾아가는 까닭이다.
미국의 유명 공원은 나름대로 등급이 있다. 국립공원(National Park)-주립공원(State Park)-카운티 공원(County Park) 혹은 시립공원(City Park)이 그것이다. 누가 관할하느냐에 따라 붙여진 일종의 식별표이자 계급장인 셈이다. 사람들 선호도나 공원의 명성도 대체로 이 순서다.
공원(park)이라는 이름 대신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 준국립공원)이나 역사공원(Historic park)이 붙여진 곳도 많다. 호수나 바다, 강, 숲, 전쟁터 등이 그런 곳인데, 유래가 깊고 보호할 필요가 있는 곳은 연방정부나 주 정부가 별도로 지정해 관리한다.
연방 공원관리국(NPS)이 관할하는 이런 공원은 미국 전역에 400개가 넘는다. 그중 국립공원은 2021년 말 현재 63개다. 최초의 국립공원은 1872년에 지정된 옐로스톤이다. 가장 최근에 국립공원이 된 곳은 2020년 12월에 지정된 웨스트버지니아의 뉴리버협곡(New River Gorge)이다. 방문자가 많기로는 테네시의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연 1100만명)이 1등이고, 애리조나의 그랜드캐년(연 600만명), 캘리포니아의 요세미티(연 500만명)가 2, 3등이다. 국립공원이 가장 많은 주는 캘리포니아로 9개가 있다. 알래스카가 8개로 두 번째, 그다음 유타 5개, 콜로라도 4개 순이다.
국립공원이 하나도 없는 주도 20개나 된다. 조지아도 그중의 하나다. 그래도 국립(National)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념물이나 강, 해안, 숲은 조지아에도 꽤 있다. 주립공원도 많다. 모두 48개나 되고 사적지(Historic Site)도 16곳이 있다.
조지아 주립공원은 14년을 살았던 캘리포니아와의 그것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대단한 경치나 유별난 특색을 가진 곳이라기보다는 인근 주민들이 언제든지 가서 바비큐도 구우면서 한나절 쉬거나 시간 보내기 좋은, ‘잘 관리된 자연’이었다고나 할까. 붐비지 않고 한산하다는 것도 큰 차이였다. 호수가 있고, 똑같은 나무가 있고, 가쁜 숨 몰아가며 걷지 않아도 되는 평탄한 트레일이 있다는 것은 조지아 주립공원의 공통점이었다. 그렇지만 유래를 찾아보고 지역 향토사도 더듬어 보면서 각 공원의 특징을 알아가는 일은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걷기 좋은 트레일이 다양하게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찾아갈 만한 매력이 있었다. 오늘 소개하는 돈 카터 주립공원도 그런 곳이다.
#. 돈 카터(Don Carter) 주립공원은 레이크 레이니어 호수 북쪽 끝에 있다. 조지아 북쪽 테네시주 접경 산악지대에서 흘러내려 온 채터후치강이 레이니어 호수와 만나는 지역이다. 애틀랜타 중앙일보가 있는 둘루스 한인타운에서는 차로 약 50분 거리다.
레이니어 호수는 1956년 뷰포드댐 완공으로 생겨난 인공 호수다. 여의도 면적의 50배 이상일 만큼 크고 넓어 매년 800만 명 이상이 찾는 조지아 주민들의 최대 휴양지다. 돈 카터 공원은 이 호수를 끼고 있는 유일한 주립공원이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카누와 조정 경기가 열린 곳도 레이니어 호수인데 돈 카터 공원에서 멀지 않다.
공원이 정식 개장한 것은 2013년으로 조지아 주립공원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문을 열었다. 돈 카터라는 이름은 조지아 천연자원국 보드에서 29년을 봉사하면서 홀카운티에 주립공원을 유치하기 위해 헌신했던 게인스빌의 부동산 업자 돈 카터(1933~2019)를 기려 붙여졌다.
올림픽 조정 경기 개최를 기념해 만든 레이크 레이니어 올림픽 공원. 돈 카터 주립공원 입구에서 5~6분 거리에 있다.
나는 지난 주말 오전 이곳을 찾아가 3시간을 걷다 쉬다 하고 왔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입구 매표소엔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비치된 봉투에 하루 주차비(5달러)를 준비해 수거함에 넣었는데 막 그때야 방문자센터 직원이 나타났다. 따라 들어가 아예 1년짜리 입장권을 샀다. 값은 50달러. 10번 이상 찾아가야 본전이지만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해서다. 먼저 낸 하루 주차비 5달러는 자동으로 기부한 셈이 됐다.
공원 입장료는 하루 5달러다. 매표소 직원이 없을 땐 이렇게 봉투에 돈을 넣어 수집함에 넣어야 한다.
방문자센터에서 받은 트레일 지도를 보니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공원 남쪽 호안을 끼고 도는 돈 카터 하이킹 트레일이다. 5.5마일. 약 2시간 정도면 한 바퀴 돌 수 있다. 공원 북쪽 언덕배기를 도는 도그 크리크 트레일도 좋다고 나와 있다. 붙어 있는 다른 구간을 포함하면 전체 트레일 길이는 6.1마일, 2시간 반 정도면 걸을 수 있다.
나는 방문자센터에서부터 시작되는 오버룩 트레일을 따라 호수까지 내려갔다. 최근 내린 비로 물빛은 황토색이었다. 호수를 바라보며 한동안 ‘물멍’을 하다가 호숫가로 이어진 왕복 2마일 남짓의 테러핀코브 트레일을 걸었다. 조금 아쉬워 다시 1.5마일 우드랜드 루프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조붓한 길섶에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물도 있고 겨울에도 초록을 잃지 않는 침엽수가 울창했다.
호수가 비치. 여름엔 물놀이도 하고 모래 장난도 할 수 있다. 비가 온 뒤라 호수 물이 황토색이다.
트레일 한쪽에 누군가 나무를 잘라 이렇게 사슴 인형을 만들어 놓았다.
숲길은 모두 한산하고 호젓했다. 그래도 부지런한 사람은 있어 가끔 혼자 걷는 사람도 만났다. 인적 드문 곳에서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긴장이 된다. 그럴 땐 경계감을 애써 감추고 일부러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굿모닝!” 상대도 같은 느낌인 듯 똑같이 큰소리로 답을 한다. “헬로~”
인적 드문 이 숲속에 저들은 아침부터 왜 저렇게 혼자 와서 걸을까. 어떤 사람에게는 이 시간이 기도의 시간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몸의 회복과 치유를 위한 운동의 시간이기도 하겠다. 나는 어느 쪽일까. 생각해보니 나에게 걷기란 한 주일 정신없이 달려오면서 탁해진 기운 맑게 정화하고, 거칠어진 기질 어질게 순화하는 시간인 것 같다. 평소 잘 떠오르지 않던 아이디어가 불쑥 떠오르기도 하고 고민에 대한 답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도 망 외의 수확일 때가 많다. 걸어 본 사람은 다 안다. 말로는 표현 안 해도 이 모든 혜택이 걷기가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돈 카터 주립공원내 우드랜드 트레일을 한 주민이 걸어가고 있다. 한 바퀴 도는데 1.5마일 정도이고 포장이 되어 있어 노약자들도 걷기에 좋다.
방문자센터는 공원 안내는 물론 간단한 기념품도 판다. 한 가지를 물으면 대여섯 가지를 대답해 줄 정도로 친절한 직원(오른쪽)과 함께 한 기자.
*메모 : 공원 안에 숙박 가능한 캠프장과 캐빈이 여럿 있다. 보트나 낚시가 가능하고 여름엔 수영과 모래 장난을 할 수 있는 인공 비치도 인기다. 캠핑카(RV)를 위한 공간도 넉넉하다. 하루 입장료(주차비) 5달러. 조지아 주립공원 1년 입장권(Annual ParkPass)을 사면 주립공원은 어디든지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국립공원 연간 이용권(the America Beautiful)은 인정하지 않는다. ▶주소 5000 N. Browning Bridge Rd. Gainesville, GA 30506
글·사진=이종호 기자 lee.jongho@koreadaily.com